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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Oct 04. 2022

외로움을 견디는 일

오랜만에 남도의 고향 집에 다녀왔다.

완연한 가을이다.

대추나무 열매엔 빨간 물이 스며들고

감나무에 달린 푸른 감은 노랗게 색깔을 바꿔가는 중이다.

밭에 줄지어 선 배추는 이제 막 속 잎이 조금씩 차오르고 있다.


집 주변의 들과 밭, 뒷산으론 대나무와 칡넝쿨이 무성하다.

온통 그들의 영토인양 여기저기 왕성하게 퍼졌다.

어릴 적엔 산기슭에 칡 찾아다닌 적이 있고, 대나무 있는 집이 부럽기도 했지.

이제는 산소에 파고들 정도로 지천이라 성가신 존재인 그들,   

시골 풍경이 이렇게도 바뀔 줄이야.

   

하룻밤 짧게 머물렀지만

어느 때보다 시간을 꽉 차게 보낸 느낌이다.

그 이틀, 어머니와 함께였다.

저수지가 보이는 서쪽 하늘로 황혼이 지는 시간,

6시쯤 앞마당에 불을 피웠다.

읍내에서 산 고기를 구워 밭에서 따온 상추에 싸 먹고

평상에 나란히 앉았다.


사방이 초록으로 둘러싸인 집 마당은 선선하다.

어느덧 불 가까이, 따뜻한 게 그리운 날이 성큼 다가왔다.

불가에 앉아 남은 숯을 하나씩 넣으면서

어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밤 10시가 넘어가는 줄도 모른 채...

  





언제 찾아도 고향은 포근하다.

마음 한편으론 아련하고 싸한 어떤 느낌도 밀려온다.

아버지가 10여 년 전에 사고로 갑자기 떠나시고

고향 집은 오랫동안 어머니 혼자 지키셨다.

인가가 드문 외딴 동네라

어머니의 유일한 친구는 강아지 세리다.  

애완견 출신인데 시골집에 오면서 팔자가 사나워진 세리.

마주칠 때마다 어머니와 세리 사이에 혼잣말 같은 대화가 오간다.

    

지난해부터 동생이 사는 인근 도시에

어머니가 작은 아파트를 얻으면서 시골집을 비우는 날이 늘었다.

세리 혼자 빈집을 지키는 날이 많아지고...


세리를 보면,

어느새 외로움에 익숙해진 어떤 운명 같은 게 떠오른다.

산이고 들로 쏘다니는 대신 하루 종일 집 마당에서만 맴돌면서.

가끔 우렁차게 짖을 때 보면

길고양이가 도둑처럼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중이다.

길고양이의 운명은 좀 나을까, 자유로워도 늘 끼니가 걱정이겠지.    

  

세리보다 앞서 어머니는,

더 긴 외로운 날을 견디셨을 게다.

전화를 하면 말씀이 많아지고 직접 뵙게 되면 이야기는 끝이 없다.

사람이 그리운 날들,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렇게 온기를 느끼는 게 세상사는 일인데, 그마저 쉬운 건 아니다.


고향에 다녀온 날은

오래 외로움을 견딘 어머니의 얼굴이 내 안에 내내 머문다.

어디선가 외로움을 견디고 있을 사람들이 생각난다.

알고 보면 내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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