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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Oct 10. 2022

무알콜 맥주로 과음한, 그날의 진실 토크

한 달 전쯤 브런치에 ‘무알콜 맥주로 과음하면 생기는 일’이란 글을 올렸다.

글이 다음 포털에 노출되면서 5만 4천여 뷰를 기록하고 있다.

우선 많은 분들이 봐주신 데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큰 관심이나 흥미와 함께 여전히 의심쩍은 반응과 반문도 이어졌다.

술기운이 올라 술자리가 즐거워진다고?

과연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충분히 이해되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왜냐하면 나도 예전엔 그 무알콜이란 게 맛은 미지근하며 시금털털해서, 참으로 수상쩍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끔 술 반입이 금지된 노래방에서 술 대용으로 그걸 먹어본 소감은 영 아니올시다,였다.

그런 건 입맛만 버릴 뿐, 마실 게 못 된다고 진작에 결론을 냈다.     


무알콜이 효과를 보려면

술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찬찬히 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물론 술 자체가 맛있을 수 있다.

종류에 따라 다양한 맛과 향기, 느낌과 매력이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술을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이라면

술이 만들어주는 분위기, 함께 하는 사람들, 그 순간의 좋은 느낌을 오래 기억한다.     


무알콜 자체에 대한 몰입감과 수용력이 높은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다르다.

그날 제주에서 가진 우리 모임의 선구자는 그 강도와 감응력이 최고 경지에 오른 것 같다.

실제 그는 예전 전성기의 술자리처럼 분위기를 주도하니까.     


나는 고백하자면, 중간 정도가 아닐까 싶다.

바로 강한 삘이 오는 건 아니지만 사이다를 마시거나 맹물로 건배할 때보다는 확실히 분위기가 살아난다.

무알콜로 건배를 거듭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술자리에 빠져든다는 느낌이 실감난다.     

가끔 추억의 동지들이나 꾼들을 만날 일이 있으면 무알콜 두어캔을 준비해가는게 이제는 기본 리추얼이 됐다.




중요한 건 결국

나의 몰입 정도와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아닐까.

업무적으로 어쩔 수 없이 참석하는 게 아니라,

편안한 사람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자리라면 그 자체로 설렘과 기대감이 있다.

그러면 무알콜이라도 술이 약발(?)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기분은 좋아지고 취기는 자연스럽게 올라오게 마련이다.

뇌가 속고 눈의 긴장은 풀어지고,

딱딱하던 마음이 어느 순간 말랑말랑해지는 것이다.

앞에 있는 사람이 좋아지고 어느 순간, 함께 어울린다는 동지의식에 가슴 뭉클해진다.


무알콜과 친해지면 좋은 점 중에 으뜸은

진짜 술맛이 무엇인지, 음미하게 된다는 점이다.

소주 한잔, 막걸리 한잔의 가치와 소중함이 절실히 느껴진다.

사라지고 상실한 것들에 대한 기억은 늘 애틋한 법이다.

떠나간 애인과의 추억이 아름답고 소중해 보이는 이유와 비슷하다.


사랑을 아는 순간 사랑이 떠나고

사랑이 떠난 순간 그 사랑을 절절하게 느낀다는 것.

영화 <헤어질 결심> 탓인가, 어디선가 많이 들은 말 같다.

사랑은 결심한다고 오는 게 아니라 느닷없이, 때로 자연스럽게 스며들듯 찾아온다.

하지만 헤어질 때는 결심이 필요하다. 아쉬움과 고통이 따른다.

그래도 결국 헤어져야 한다면,

가능한 한 아름답게 헤어지고 그 사랑을 소중하게 간직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앞으로 밀고 나갈 힘을 얻게 되니까.


무알콜은 유알콜 시절의 나와 내 인생의 어떤 순간을 비교하고 돌아보며, 사랑하게 한다.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유알콜이든 무알콜이든, 내 인생의 행복한 순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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