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러닝 노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일 Apr 28. 2023

60대 남자, 필라테스에 빠질 줄이야

- 은퇴 후 두 달, 필라테스를 시작하고 내 몸에 생긴 변화

필라테스를 시작한 지 두 달째 접어들었다. ‘출퇴근 인생’ 졸업한 지 두 달째라는 얘기다. 평일 오후 2시에 필라테스 강습에 출석한다. 일주일에 겨우 2번이긴 하지만 내 생활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다. 60년 사용한 내 몸의 현주소를 살 떨리고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한 후 가장 좋은 점은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 30여 년 공직생활 중 자주 들은 말 중 하나가 ‘지시사항 준수’가 아닐까 싶다. 이제 아무도 내게 지시하지 않는다. 나를 평가하지도 않는다. 내 뜻대로, 내가 선택한 일정에 따라 움직인다. 시간 맞춰 정해진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으니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흐른다. 하고 싶은 것 하나둘 보따리를 풀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짧다.


조금만 관심 갖고 둘러보면 주위에 놀거리가 참 많다. 무엇보다 다양한 문화 강좌와 교육 프로그램, 재미있는 취미활동이 널려 있다. 요즘 우리 부부는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2인 1조로 함께 참여하는 수업이 부쩍 늘었다. 아내는 일주일 스케줄이 빡빡하다. 문득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생각나 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은퇴 후 선택한 운동


평일 낮에 하는 필라테스라 그럴까, 남자는 나 혼자다. 하지만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요즘엔 어딜 가나 여성들이 다수를 차지하니까. 아내가 다니는 요가 강좌에도 남자는 있을까 말까,라고 한다. 남자는 다들 어디로 갔을까.


이럴 때는 일종의 ‘정신승리’가 필요하다. 내 몸, 내 건강 지키는데 남자가 나 혼자든, 조건이 열악하든 대수냐, 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여성들 틈에서 혼자 노는 게 아주 낯설진 않다. 문득 10여 년 전에 백화점 요리강좌에 두어 달 다닌 기억도 되살아난다. 20여 명 정원에 남자는 한둘 정도였다.


필라테스 시간이면 나는 거의 고문 상태에 빠진다. 이런저런 동작을 취하다 보면 몸 구석구석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리는 것 같다. 으~으~으 고통에 찬 비명소리에 가깝다. 강사는 어떻게 내 급소를 이리도 잘 알까. 취약 포인트만 골라가면서 아주 예리하게 공격을 퍼붓는 것만 같다. 복부, 고관절, 허리를 받쳐주는 척추, 허벅지 안쪽까지. 이렇게 많은 내가 있었나? 평소엔 의식하지 못했던 수많은 나를 느낀다. 내 몸을 이루는 마디마디, 구석구석을 절절히 느낀다. 강습이 끝날 때쯤이면 완전 무장해제 상태로 녹초가 된다.       


 ⓒ Pixabay


보통 우리는 몸의 특정 부위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문제가 있을 때에야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소엔 잊고 지내다 아프면 일상의 평화가 소중한 줄 안다. 필라테스를 시작한 후론 내 몸 곳곳이 좀 더 의식적으로 다가온다. 조용히 나를 돌아보며 자주 내 몸을 느끼게 됐다. 목 아래쪽에 무의식적으로 힘이 들어가 있는 게 크게 느껴진다.


특히 어깨 부분이 경직돼 있고 상체가 수그리듯 움츠러든 상태다. 긴장 상태가 나도 모르게 습관화되고 체질화됐다. 살면서 외부의 자극이나 어떤 상황에 본능적으로 경계와 방어 모드를 유지한 때문일까. 그게 조직 생활을 하면서 이뤄지는 일방통행식 지시나 명령, 무례하고 공격적인 언행이라면 더욱 예민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몸을 안으로 웅크리고 자신을 감싸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무슨 잘못을 하거나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살아야 했을까.      


나를 돌보지 않고 달려온 세월


생각해 보니 은퇴하기 전 몇 년간은 거의 해마다 목과 어깨에 통증, 저림 증상이 반복되곤 했다. 시작은 10여 년 전부터였다. 심할 때는 밤에도 어깨가 저려 잠을 잘 이루지 못했고, 한의원 단골 환자였다. 얼마 전엔 동네 마사지숍에 들렀는데, 경추 부분이 딱딱하게 굳었다고 한다. 조금 세게 누르니 무척 아프다. 몸을 얼마나 많이 썼는지, 나를 돌아보지 않고 마구 달려온 세월이 실감 난다.     


“쓸 만큼 썼구나. 젊을 땐 뭐가 뭔지도 모르고, 마음껏 썼구나.”

내 몸의 노후 상태를 직감하게 됐고 직시하게 됐다. 지금껏 60년을 쉴 틈 없이 달려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할 만하세요?”

필라테스 강사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유일한 남자인 내게 묻는다.

“힘들어요. 근데 하고 나면 기분은 좋아요.”


답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랬다. 지금 내게 꼭 필요한 시간, 힘들어도 내게 맞는 운동을 찾은 것 같다. 강습 중에 가장 자주 듣는 게 (복부를) 눌러라, (몸의 끝을) 늘려라, (중심을) 잡아라, 같은 말이다. 어깨에 힘을 빼라, 는 말은 개별적으로 자세를 바로잡아 주면서 강사가 내게 가장 자주 하는 지적이다.


이제 의식적인 노력을 계속하려고 한다. 자세부터 고쳐야 한다. 평소에 척추를 곧추세우고 어깨를 활짝 펴는 연습이 필요하다. 뽐내듯이, 잘난 체하듯이 어깨를 열면서 가슴을 앞으로 내미는 게 좋다고 한다. 지금껏 내 몸이 모르던 생소한 자세다.


몸에 힘을 빼고 어깨의 긴장을 푸는 데는 호흡법을 가다듬는 게 큰 도움이 된다. 특히 내쉬는 숨이 중요하다. 입을 벌리고 천천히 내쉬는 게 포인트다. “에라, 모르겠다”라며 자포자기하듯이, 세상만사 다 내려놓듯이 느긋하게 숨을 내쉬는 것이다.


이런 동작을 되풀이하며 내 몸이 저절로 기억해 주길 기대한다. 낮게 낮게 내 몸이 머무는 편안한 자리를 찾을 필요가 있다. 그러면 마음과 정신 상태도 덩달아 건강해지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오마이뉴스> (2023.4.23)에 게재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는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