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그래서 한 걸음부터 시작한다

by 식이타임

“이거 어떻게 돌리는 거야?”

“너 정말 한 번도 돌려본 적이 없어?”

27살 늦깎이에 군대에 가서 처음 작동시켜 보았다.

그것은 세탁기.(부끄럽지만 사실이다.)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한심하다는 듯 날 쳐다본다.

스물일곱의 나이를 먹는 동안 세탁기를 한 번도 돌려보지 않은 것이다. 세탁기 문을 열고 세제를 적당히 때려 넣은 다음 몇 개의 버튼을 누르면 되는 것을.


늘 엄마는 성실하게 세탁기를 돌렸고 내가 입어야 할 옷이나 신어야 하는 양말들은 항상 필요한 위치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심지어 글을 적는 지금도 엄마는 양말을 서랍에 넣어두고 가셨다.) 딱히 안 하려고 한 건 아닌데,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한 것이다.


나름 자립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해 왔는데, 세탁기의 어느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세제를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모르는 나와 마주하며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는 생각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 빨래를 포함한 모든 일들을 생각해보았다. 수많은 일들은 부모님의 손에 의해 진행되고 있었다. 퇴근 후엔 '엄마가 해놓은 음식'이 있고 음식이 없는 날이면 냉장고에 있는 '엄마가 사다 둔 고기'를 대충 구워 먹으며 해결한다. '엄마'가 주체다. 우리 집은 주택이라 알게 모르게 손 볼 곳이 많은데 아빠는 바쁘게 일하면서도 짬이 나는 시간에 집에 관련된 모든 일을 해놓으신다. 텃밭에 잡초를 뽑는다거나, 눈이 오면 집 앞에 눈을 치운다거나. 그 모습을 보면 “나는 절대 주택에서 살지 않을 거야. 귀찮아서 어떻게 살아?”라고 하지만 지금의 나라면 어디에 살아도 귀찮아할 게 뻔한 모습이 부끄러워 내뱉는 말이다.


친구들이 종종 묻곤 한다.

“이제 적당히 나이도 먹었는데 독립할 생각 없어?”

“음.. 서른 즈음? 아직은 필요성을 못 느끼겠어.”(서른 즈음이라는 답을 한 이유는 서른 즈음이면 어른이 되어 있을 것 같아서다.) 나는 왜 독립할 필요성을 못 느꼈는지 알 것 같다. 엄마와 아빠는 나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움직이고 계셨다.


눈이 많이 온 어느 날, 아빠는 혹시나 내 차가 눈길에 미끌릴까 봐 미끄럼 방지 스프레이를 사 오셨다.

“이런 건 이제 네가 (아빠를) 챙겨줘야 하는 거 아니야?”

“후! 그러네요.”


바쁜 일정을 마치고 쓰러지듯 엎드려 생각한다.

‘피곤에 지쳐 내 몸 하나 지키기 힘든데, 내가 독립하면 지금 빨래도 하고, 요리도 하고, 쓰레기도 버리고, 화장실 청소도 해야겠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큰 일어났어. 난 하나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 같아. 이러다가 나중에 결혼할 사람한테 '도대체 뭘 배웠냐고' 욕먹는 거 아니야? 독립이라도 해서 하나씩 배워야겠어.”

“지금부터 하면 되지, 굳이 독립해서 배워야 해? 지금 할 수 있는 거부터 해봐.”


'그래,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좋은 핑계가 생겼다.

마침, 오늘 밤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다.

내일은 일찌감치 일어나 출근하기 전에 아빠 차와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워야겠다. 아빠를 대신해서.


한 걸음부터 시작한다.
어른이 되기 위해.


<씨앗이 자랐다. 아이들과 심었다. 이름은 '강냥콩'>


어른이 된다는 건 네가 차지해야만 하는 거야.

스스로에게 주는 거지.

<로이스 맥마스터 부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