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강함이란
살아가며 스스로가 정말 나약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바로, 결심한 일을 해내지 못했을 때다. 몸이 피곤하다거나 급한 일이 생겼다거나 아니면 그냥 기분이 별로인 날엔 어떤 것도 해내기 싫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지금보다 몇 년 더 젊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런 마음도 곧 잘 이겨냈던 것 같은데. 살아갈수록 늘어가는 책임감은 나를 성장하게 했지만 한편으론 나를 피곤의 늪으로 가라앉도록 만들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엄마는 정말 강한 사람이었다. 할아버지께 마음상하는 말을 들었던 날도, 감기몸살에 걸린 날도, 아빠와 싸웠던 날도 묵묵히 밥상을 차렸기 때문이다.
그런 엄마를 볼 때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생각했다. 기분이 너무 나빠 밥상 따윈 쳐다보기도 싫은 날엔 한 번쯤 ‘안 할’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가 보여준 행동의 끝은 항상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순간을 수없이 보며 자랐다.
나도 엄마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두었다. 올해엔 육아휴직을 시작했는데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아내와 사랑을 듬뿍 주고픈 아들을 위한 선택이었다. 이 시간을 반드시 가치 있게 보내고 싶다는 내 욕심도 있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해내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아들이 밉기도 했고 ‘여보가 휴직하고 육아도 해주면 집안일은 내가 얼마든지 도와주지!’라고 하던 아내가 소파에 누워 있기만 할 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너무나도 미운 마음이 드는 날엔 어떤 것도 하기 싫다는 마음과 마주했다. 차마 아무것도 안할 순 없어서 분노의 청소기를 돌리고 있을 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밥은 제대로 챙겨먹냐.’는 말에 묵묵히 밥상을 차리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어떤 날엔 화가 많이 났고, 그러다 어떤 날엔 정말 힘들었겠구나. 때론 다 내팽개치고 도망가고 싶었겠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할 일을 해냈었구나.’하고 말이다. 이제 힘들 때마다 묵묵히 밥상을 차리던 엄마를 떠올려보기로 했다. ‘오늘도 엄마는 엄마의 일을 해냈겠구나.’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