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남편, 서툰 아빠
영화 <어바웃타임>의 주인공 톰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바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사랑하는 메리의 마음을 얻기 위해 몇 번이고 시간을 되돌린다. 어색한 말투, 미숙한 행동을 할 때마다 자신의 행동을 수정하는 것이다. 결국, 완벽한 대사와 몸짓으로 그녀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다.
내겐 톰처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과거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이다. 행복했던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다던지, 혹은 자유롭게 살았던 총각의 삶을 떠올려 본다. 다시 돌아간다면 해보고 싶은 일들이나 절대 하지 않을 것들을 생각한다.
'스무 살의 나로 돌아간다면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 볼 거야. 그러려면 돈이 필요한데 몇 년 뒤 가격이 급등할 비트코인을 왕창 사두는 거지. 그토록 원했던 돈 많은 대학생이 되는 거야. 그리고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가야 해. 일하기 시작하면 말이야, 특히 결혼하고 아이 키우면 긴 시간 여행 가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러고 보니 그때로 돌아가면 결혼은 조금 늦게 해도 괜찮을 것 같아...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놓은 뒤에 말이야.'
상상의 끝은 현재에 대한 아쉬움으로 끝이 나곤 한다. 물론 과거로 돌아간다면 군대를 다시 다녀와야 한다는 크나 큰 단점이 있다. 하지만 삶이 너무 괴롭다고 느껴지는 날, 그러니까 군대 따위는 한 번 더 가도 상관없을 만큼 힘든 날엔 자고 일어나면 스무 살의 내가 되어있길 기도한 적도 있다. 왠지 지난 인생을 다시 살아본다면 더 좋은 선택을 할 것이며 지금보다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였을까? 결혼과 함께 육아를 시작하고부터 버릇처럼 과거를 상상했던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아침에 일어나는 일도 잠에 드는 일도 자유롭지 못했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 아이는 내 마음처럼 따라와 주지 않는 날이 많았고 그 순간엔 참을 수 없이 화가 나기도 했다.
오랜만에 대학친구 형준이와의 술자리였다. 스무 살부터 함께 지내 온 녀석을 한 글자로 표현하자면 '서툰 사람'이었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대학생처럼 옷을 입는 것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어린아이 같았기 때문이다. 어리숙했던 녀석이 좋아하는 여자가 몇 명 있었는데 함께 선물도 고르고 머리를 쥐어짜며 편지 쓰기를 도와준 적도 있었다. 비록 실패로 돌아가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형준이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랬던 형준이가 얼마 전 모쏠탈출에 성공했다.
"이야~ 연애하더니 옷도 말끔하게 입고 다니네."
"여자친구 생기니까 좋더라.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도 가고..."
"그니까 예전에 00이 주려고 선물포장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큭큭."
"아유 진짜 또 그 이야기냐. 돌이켜보니까 그때 좋아했던 애들이랑 잘 안 돼서 다행인 것 같아. 안 그랬으면 지금 여자친구 같은 사람 못 만났지"
형준이는 행복해 보였다. 내겐 늘 '서툰 사람'이었던 그가 부럽다고 느껴졌다. 녀석은 과거가 아닌 지금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준이는 과거의 서툴렀던 자신의 모습이 있었던 덕분에 지금 행복하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과거의 형준이를 바라봤던 것처럼 나 스스로를 서툰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하고 생각했다. 서툰 남편, 서툰 아빠, 서툰 서른의 사람. 서툴러서 어설프고 힘든 거라고.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상상 속 도피를 했던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