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식이타임 Apr 06. 2023

유치하지만 든든한 위안

 축구 경기장에서만 보던 선배와 사적으로 만나게 된 건 같은 시기에 육아휴직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공동육아를 해보자는 선배의 제안이었다. 각자의 집에 번갈아 초대하기도 하고 가벼워진 지갑을 챙겨 카페에 가기도 한다.


 처음엔 선배와 나,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지만 점차 서로의 민낯을 드러내며 친숙해지기 시작했다. 낯선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 데다 아내가 출근하면 혼자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육아동지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든든해졌다.


 선배의 딸은 19개월, 우리 아들과 8개월 차이가 난다. 아이들에겐 8개월이 크나 큰 시간임을 증명하듯 선배의 아이는 걷기도 하고 의사소통도 잘한다. 나는 일찍이 앞서 있는 아이의 모습을 신기해하고 형은 우리 아이를 보며 예전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육아를 하며 깊어진 고민들을 털어놓곤 하는데 "어! 나도 그래."라는 한 마디가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그런 내 모습이 유치하게 느껴질 때도 있긴 하지만 이 세상에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때로는 대화를 하며 비좁은 나의 세계관이 넓어지기도 하는데, 휴직으로 인해 빠듯해진 생활비 걱정을 이야기했더니 "우리도 이렇게 힘든 데 말이야, 부모님은 어떻게 키웠을까?" 하는 선배의 말에 어깨가 무거웠을 아빠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오랜만에 아내의 허락을 받고 호기롭게 나간 풋살동아리 모임자리였다. 아이 없이 밖을 나선 선배의 모습을 보니 한 껏 신이 난 표정이었다. 나도 덩달이 기뻐했고 우리 모두 술이 조금 더 들어갔다.


"형, 어제 너무 즐거워 보이던데요."

"뭐야, 나 놀리는 거 같은데! 숙취 때문에 머리 아픈데 와이프한테 티도 못 내고 있다ㅎㅎ."


 어쩌면 사람들은 ‘나만그런줄 알았는데 아니었네?’하는 유치하지만 든든한 위안 속에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이따금씩 삶이 버겁게 느껴지거든 너무 슬퍼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는 나를 보며 유치하지만 든든한 위안을 얻을지도 모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서툰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