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여기 자리 났다고 연락 왔는데, 이제 보내볼까?”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한 달, 집 근처 어린이집에 자리가 생겼다. 아내는 거리도 가까우니 기회가 왔을 때 보내자고 했다. 겉으론 “벌써 보낸다고?”하는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지만 단비 같은 자유시간이 생길 수 있다는 기대감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홀로 육아를 하며 하루가 다르게 몸과 마음이 지쳐갔기 때문이다. 막상 등원날짜가 다가오니 걱정이 커지기 시작했다. 아들은 아직 돌도 되지 않은 아기였으니 말이다.
'아직 말도 못 하는데 혹시나 맞고 오면 어떡하지?'
'자기를 버린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불안한 마음을 안고 등원을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은 아들과 함께 등원해 두 시간을 보내고 왔다. 새로운 환경에 낯설어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내가 옆에 있어서 그런지 금세 잘 놀기 시작했다. 아이의 조그마한 행동에도 아낌없는 리액션을 보내는 선생님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놓였다. 하루 종일 아빠랑 노는 것보다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이를 혼자 두고 오는 순간부터였다. 나와 떨어지는 순간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울기 시작했다.
“아버님, 꼭 헤어질 땐 밝은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어린이집 선생님은 신신당부했다. 찝찝한 마음이었지만 애써 웃음 지으며 돌아섰다. 나처럼 자식을 처음 어린이집에 맡기는 엄마들은 “헙... 어떡해...”하며 눈물을 흘렸다. ‘아유, 몇 시간 뒤면 볼 건데 뭘 눈물까지 흘려.’라며 쿨한 척 돌아왔지만 나 역시 어느새 눈물콧물바람이었다.
‘왜 눈물이 났을까?’
아이가 막 태어났을 때 <평생을 좌우하는 세 살의 기억>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세 살까지는 주 양육자가 아이를 돌보아야 불안함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내용이었다. 내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지만 “돈을 쫓아가는 것보다 아이를 위한 희생을 선택해야 한다.”는 외국인 부부의 말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쁜 부모가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즐겁게 놀다 와!"
어린이 집에 보낸 지 한 달이 꼬박 넘었다. 언제 울었던 날이 있었냐는 듯 아들은 하이파이브를 하며 씩씩하게 등원한다. 아이가 아프지만 않으면 여섯 시간의 자유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덕분인지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가 줄었다. 이젠 어린이집에 보낸다는 이유로 죄책감은 가지지 않기로 했다. '역시 양보단 질이지!' 주어진 시간 동안 아들에게 최선을 다하자고 결심하니 마음이 한 결 편해졌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던 아내는 이젠 내가 부럽다고 말한다. 나는 그녀가 너무 부러워하지 않도록 자유시간 동안 반찬도 만들고 청소도 한다. 그리고 문자를 보낸다.
"헉! 여보, 청소하고 나니까 벌써 하원시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