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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왜 하필 여름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by 식물리에


지선이에게

표지를 넘기면 적혀있는 동생에게 쓴 너의 작은 메모에 나도 약간의 응원을 받으며 책을 읽기 시작했어.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렇게 글로 남겨 이 책을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어. 제목만 보고 상상한 이 책은 한 여름의 열기마저 무찔러버리는 싱그러움, 젊음과 패기를 느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해버려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어. 심지어 앞에 단편 몇 개는 이미 서점에서 읽었는데도 말이야.

일단 어제부터 우리 집 고양이 무무가 아파서 더 감정이입을 하고 책을 읽게 되었다고 고백할게. 한 번도 탈없이 지내던 아이가 갑자기 괴로운 토를 연신 하더니 식음을 끊어가고 있어. 우리 집에 온 지 일 년이 채 못되었는데, 갑자기 왜 이러는지 나는 너무 무서워. 시간마다 무무의 몸을 만지면서 혹시나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너무 두려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상실과 죽음이 나의 또래가 겪는 것이라 그런지, 그리고 남은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너무나 현실적으로 보여주어서 그런지 단편 하나하나를 다 읽을 때마다 마음이 가라앉았어.

가라앉은 마음을 어찌할 줄 몰라서 중간중간 책을 덮어 무무의 상태를 확인했어. 평소 없어서 못 먹는 츄르를 코끝까지 가져대도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려버리는 무무를 보고 숨이 막혀왔어. 그리고 무서운 생각들이 몰려와서 좁은 곳이지만 무무 옆에 누워서 책을 마저 읽었어.

단편을 모은 소설집이니까 비슷한 색깔의 단편을 모았겠지. 두근두근 내 인생이란 책은 표지에 그려진 알록달록한 풍선들처럼 따뜻하고 뭉클했는데, 그 기억으로 이 책을 읽고 싶었던 내가 괜스레 배신을 당한 느낌도 들어.

무무도 윤민 오빠도 부모님도 동생도 내 곁을 더 지켜줄 거라고 믿는데, 책 속의 주인공들이 겪은 상실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더 겁이 났나 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고들이 나에게도 찾아올 까 봐, 그리고 이기적 이게도 내가 남겨질까 봐, 느껴지지도 못할 큰 고통 속에서 오랜 시간 허우적 될까 봐 무섭더라. 그래서 눈물, 콧물이 계속 나왔어.

눈물보다 더 오래 훌쩍인 콧물이 마를 때쯤, 나는 아마 피식하고 웃고 저녁상을 차릴 것 같아. 이제 마음 한편에 단단히 자리 잡은 이 두려움은 어제까지만 해도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어서 내가 쫄았었나 봐. <건너편>의 도화가 나물 맛을 알아버린 것처럼 나에게도 그럴 때 가 왔나 봐. <입동>의 영우 아빠가 영우 생각에 참아오던 눈물이 쏟아지는 순간이지만, 이미 풀 바른 벽지를 놓을 수 없어 두 팔을 내릴 수 없는 것처럼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때가 왔나 봐.

그러면 나는 이제 또 무무를 보러 가야겠어.

20200911 경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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