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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신혼여행

솔직해서 감사한 장강명의 에세이

by 식물리에


장강명씨에게

장강명'님'에게라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부담스러워하실 것 같아 '씨'라는 호칭으로 적어봅니다. 이 책은 친구가 빌려준 다섯 권의 책 중에 제가 두 번째로 읽은 책이에요. 아마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이
없었더라면 첫 번째 책이 되었을 거예요.

책 앞장에는 '슬쩍 첫 페이지를 넘겼는데, 훌쩍 마지막 페이지를 닫았네. 2016.10'이라는 멘트가 적혀있었어요. 책을 빌려준 제 친구의 남편이 된, 2016년에는 당시에는 남자친구였던 오빠가 적은 글인 것 같아요. 이 멘트를 보고 저도 이 책을 단숨에 읽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저 혼자 생각이지만 저는 그 오빠와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약간의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렇게 글을 적는 이유는 저도 그 오빠가 그랬을 것처럼 작가님의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크게 공감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 여기 하나 더 있어요'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HJ님과는 여전히 잘 지내시고 계시겠죠. 보라카이에서 사 온 바나나칩은 아직도 다 못 드셨는지가 제일 궁금하네요.

별도의 식을 치르지 않고 혼인신고를 하고, 5년 만에 신혼여행을 가게 된 점은 독자로서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보라카이에서 두 분이 보낸 3박 5일의 하루하루 속 장강명씨가 생각했던 점들과 HJ님과의 주고받은 대화들은 꽤 흥미로워서 개인적으로 기록하고 싶어 졌어요.

여행을 준비하면서 살짝 공개된 장강명씨의 지난날들은 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대체로 무언가를 때려치우거나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면서 정체성을 쌓아오지 않았나 싶다.라는 문장에서 크게 한 방 먹은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적성이 아니다'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른 방향으로 틀었던 것들에서 도망친 것이다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아, 사실
알고 있었는데 '도망'이라는 것에 부정적인 인식이 있어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던 것도 같아요.

그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처럼 결의를 다지면서도 끊임없이 '할 수 있다'의 번민에 시달렸을지도 모르겠네요.

또 마음 깊이 찔렸던 문장은 '인간은 자기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는 순간부터 어른이 된다. 그러지 못하는 인간은 영원히 애완동물이다.'라는 문장입니다. 저는 나름대로의 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들어 어느 부분은 아직도 부모님께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책하고 있었어요. 저는 아직도 제 인생을 온전히 걸 도박이 몹시 두렵습니다. 5일 남짓한 보라카이에서의 장강명씨의 생각들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아직 어른이 아니었고 장강명씨는 어른이 되신 지 꽤 되신 듯하여 그 차이를 느껴졌어요.

그래도 한국인들의 허약한 정체성이나 삶의 가치에 대한 믿음이 없어 사회적 지위에 집착한다는 부분, 알랭 드 보통에 대한 생각, 생각에 대한 피로감 등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행복의 조건이나 가성비를 따지는 것, 가난한 집 딸의 자세 등은 평소의 저를 보는 것 같기도 했어요.

그리고 '한국이 싫어서'라는 책이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특히나 두 분의 자전적 소설이라니 당장 e-book으로 있는지부터 찾아봐야겠어요. 그리고 저도 오늘부터 HJ님처럼(왠지 모르게 HJ님은 님이라는 호칭이... 하하) 행복리스트를 만드려고 합니다. 아마 제 행복리스트도 가성비가 가미된 리스트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 저는 이만 제 행복을 위해 저녁을 먹으러 가볼게요. 건강하세요.


2020.09.12. 김경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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