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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라이딩 _ 2

500km 장거리 운전

by 식물리에


진주에 사는 친구가 식물 배송을 부탁했다. 택배로 보내줄까 하다가 요즘 운전 연습 중인 내가 직접 내려가서 전달해주기로 했다. 쫄보인 나는 일반 도로에서도 속도를 잘 내지 못하는데 과연 고속도로에서 운전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출발 목표 시간은 새벽 4시였으나 지난밤 예정에 없던 따릉이 라이딩으로 아침 7시에 출발하게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경부선을 타러 양재 쪽으로 갔다. 다행히 여기까지는 대중교통으로도 조수석에 앉은 채로도 많이 다닌 길이다. 확실히 많이 다녀본 길은 어느 차선을 타야 편한지 또는 빠른지 알 수 있어서 덜 긴장이 된다.


드디어 경부선을 탔고 차가 적당히 있어서 일반도로와 상황이 비슷했다. 다행이었다. 막히는 것도 싫지만 차가 너무 없어서 쌩쌩 달리는 건 무서워서 더 싫다. 초보인 내가 처음 고속도로를 밟는 과정으로 적당했다. 다행이었다.


천안휴게소까지는 풀렸다 막혔다 하며 잘 도착하였다. 아내가 처음 고속도로를 타는데 남편은 경부선을 타자마자 졸기 시작하여 아예 잤다. 부아도 치밀도 어이가 없었지만 다행히 별 도움 없이도 운전할 수 있었다. 잠을 너무 조금 자고, 긴장하며 운전한 터라 더 이상 갈 수 없어 일단 천안휴게소에서 멈추고 몸을 풀었다.


그리고 다시 출발.


남편이 교대해주려 했지만 진주까지는 무조건 내가 가보기로 마음먹었으니 흔들리지 않았다. 천안부터는 속도가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진주까지 가는 내내 가장 저속 차선인 화물차 차선으로 달릴 줄 알았는데 거기는 나도 답답하고 앞뒤로 너무 큰 차가 있어 무서웠다. 점차 왼쪽 차선으로 자리를 옮기며, 드디어 경부선 최대 속도인 시속 100km을 밟아봤다.


신기하게도 하나도 빠른 느낌이 없었다. 속도를 보고 운전한 건 아니고 앞차와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달리다 보니 저절로 속도가 올라갔고, 어느새 시속 100km으로 달리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남쪽으로 갈수록 물들기 시작한 산들과 햇살이 너무 예뻤다. 조수석이 아닌 운전석에서 이 것들을 만끽하는 게 신기하고 감격스럽고 대견했다.


흥얼거림 주의


한 번만 쉬고 진주까지 갈 예정이었지만, 너무 날이 좋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덕유산휴게소에 들러 주유도 하고 커피와 도넛으로 배도 조금 채웠다. 남편이 다시 한번 교대를 제안했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남은 구간까지는 정말 길이 뻥 뚫려서 노래도 흥얼거리고 속도도 조금 더 많이 내서 달려보았다. 계속해서 햇살은 좋았고 내가 직접 운전해서 진주까지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무사히 도착하였고 당일치기였기에 친구와 점심을 먹고 진양호 산책 후 서울로 왔다.


진주 냉면 맛집 하연옥의 육전(먹으러 다시 진주가고 싶다)


돌이켜 생각해본 오늘 운전은 내가 연수를 하기에 완벽했다. 점차 속도를 올릴 수 있었고 그에 맞는 용기를 갖고 핸들링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남편이 깨어있지 않았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 아기 새처럼 어미가 절벽으로 밀어야만 날 수 있는 게 나 같은 겁보에게 맞는 운전연습 방법인 것 같다.


모든 일마다 사람에 따라 배우고 익히는 방법이 다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결과가 나야지만 알 수 있는 그 방법은 과정 속에서는 좋은 방법인지 나쁜 방법인지 알기 어렵다. 지금 내가 아뜰리에를 운영하는 데에도 그리고 식물과 꽃을 만지며 내 인생을 꾸려나가는 데에도 다 방법이 있고, 내가 그 방법을 잘 찾은 것이면 좋겠다.


진주 진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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