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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라이딩 _ 1

한 밤중의 따릉이 질주

by 식물리에


오랜만에 술자리는 자정을 넘기고 해방촌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금요일이 공휴일인 덕분에 불목이 된 목요일 밤이라 택시가 전혀 잡히지 않았다. 다행인지 아닌지, 어차피 우리는 무무의 수술비로 인한 긴축재정 때문에 택시를 탈 여유가 없긴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일단 무작정 더 큰길 쪽으로 걷는데, 따릉이가 딱 2대가 남아있었다.


나는 집까지 자전거로 얼마나 걸리나 슬쩍 검색을 해보았다. 네이버 지도로 40분이 걸리니, 따릉이의 성능을 보면 1시간 정도 걸리겠다는 계산이 섰다.


타고 갈까?

그래, 가자!


동행들은 택시를 기다린다며 먼저 가라고 우리를 보냈고, 우리는 따릉이를 타고 오랜만에 라이딩했다. 둘 다 걷는 걸 좋아해서 밤에 산책도 하고 한강 다리도 같이 건너고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데이트가 사라지면서 긴 산책이 뚝 끊겼다. 아마 내가 퇴사를 하고 식물리에 일을 시작하고부터 일 것이다. 뭐 했는지 모르게 바쁘고 별도로 시간을 내서 놀러 다닐 심리적, 체력적인 여유가 많이 없어진 탓이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반강제로 타고 가는 따릉이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고마웠다.


그리고 남들이 들으면 질색할 수 있는 이런 맹랑한 제안에 툴툴거리며 싫다고 하지 않는 남편에게 고마웠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내내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을 내게 양보해 준 배우자를 만나서 참 감사하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도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니 든든하다.


요즘 들어 이렇게 일상에서 감사함을 느끼고 행복함을 느끼는 일들이 잦아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서 일까? 아니면 왠지 나이가 들어가며 생각이나 관점이 변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매일 출근하며 사무실 책상에 앉아 한숨만 푹푹 쉬던 아침은 이제 사라진 지 오래이다. 그 시절보다 경제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더 힘들고 어려운 일들 투성이지만 매일매일이 감사한 날들이 이어진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 또는 취미를 잘 찾아 행복을 느끼는 일이 많아지면 좋겠다. 힘들어도 그 작은 소중함에 하루하루를 이어나가는 날이 많아지면 좋겠다.



내가 찍은 남편 _ 잠수교


남편이 찍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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