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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광양대창

무무야 미안하다

by 식물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내 앞에 양대창이 익어있다.


처음 집을 나올 때는 할로윈 클래스를 위한 재료를 사러 고속터미널에 갈 예정이었다. 예정대로 고속터미널에 오니 얼마 전에 연락을 주신 과장님이 생각이 났다. 내 첫 회사는 고속터미널역에 있는데 그 회사 선배로 팀에 나와 둘만 있어서 꽤 친했다. 그 선배가 추석연휴 직전에 전화가 왔는데 받지 못했고 그대로 다시 연락을 못 드린 게 마음에 남아 있었다. 온 김에 얼굴이라도 뵙고 가자는 마음으로 고속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연락을 드렸다. 회의 중이셨다. 그래도 회사 쪽으로 발길을 돌렸으니 누구라도 보고 가야겠다 싶어서 동기 언니에게 연락을 했고 한 시간 정도 수다를 떨었다. 이제 헤어지려고 하는데 막 내 동기 오빠가 담배를 피우러 나오고 있었다. 회사 다닐때터럼 익숙하게 흡연장소로 따라가서 수다를 떨고, 자연스럽게 사무실까지 따라가서 다른 분들과도 인사를 했다. 회사를 나온 지 몇 년이 지났지만 다들 똑같으셨고, 감사하게도 나를 알아봐 주셨다. 그렇게 여기저기 인사도 하고 근황 토크를 하다가 퇴근시간이 다 되어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저녁 약속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내 앞에는 양대창이 구워져 있다.


이럴 때 참 곤란하다. 예정보다 밖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게 되면 무무의 식사가 불규칙해지기 때문이다. 수술을 한 이유로 무무가 허겁지겁 식사를 하는 버릇 아닌 버릇이 생겼고, 최대한 자주 밥을 주려고 노력하는데 쉽지 않다. 특히나 오늘처럼 예정에 없이 나와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괜히 불안하다. 그리고 마음이 불편하다.


몇 시가 될지 모르는 귀가시간이지만 얼른 가서 밥을 챙겨줘야지. 미안하다 무무야.


(사실 메뉴가 양대창이어서 약속을 미루지 못했어, 그래서 미안해서 쓰는 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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