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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Sep 26. 2024

독량다익부 절적빈화.

책을 읽는다는 것에 특별히 이유를 두어야 하나요

사람들은 -특히 속물적일 수록 그러하듯- 재물과 재화에 대해서만 질시하고 질투하고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계기가 있었다.


친한 친구.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친구. 그의 친구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이것저것 풀다가 그의 친구가 나를 소개시켜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거절을 반복하다가 딱딱하거나 진지한 것보다는 가볍게 대화를 하는 것은 어떨까 해서, 함께 시간을 나누는 때에 함께 나오기로 억지로 약속을 잡았던 때였다. 새로운 순간에 속할 시간이기에 평소 가려고 마음에 담아 둔 좋은 카페로 일부러 가보기로 했다. 나는 평소처럼 미리 도착해 있었다. 미리 도착해서 딱히 할 일은 없지만 할 일이 아예 없지도 않은 나라, 주문을 하고 약속시간까지 남은 약 사십 여 분 동안 책을 읽고 있었다. 나의 차 안에는 이럴 때에 읽기 위한 책들을 미리 준비해 두는 편이라 그 어느 때는 읽을 것이 없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게 혼자 있는 동안 마실 음료를 다 마시고 정리한 다음 책을 마저 읽고 있으려니 나의 친구와 그의 친구, 아니 지인 정도로 하자. 그 지인이 도착했다.


내 친구의 지인인 그녀. 그녀는 책을 좋아하지 않을 인상이었다. 책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지울 수 없는 향기를 남겨서 읽는 사람은 읽는 사람끼리 서로를 인식할 수 있도록 진한 흔적을 남겨 둔다. 그녀, 내 친구의 지인인 그녀에게서는 그런 '동족'의 향기가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이런 저런 내용의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이야기를 나누려다가 중간에 나온 질문에 나는 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책은 일부러 보는 거에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 듣는 종류의 질문이었다. 도대체 말하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바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잠시 말을 멈추고 있었고, 나의 친구도 나와 마찬가지의 심정인 듯 아무 말을 못하고 있었다. 그런 우리 둘을 보더니 묘한 웃음을 짓던 그 지인은 친절하게 그의 질문에 대한 보충설명을 이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더 당황하게 되었다.


"멋있어 보이려고 책을 보는 거에요?"


발상의 전환이랄까.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시각이었다. 책을 보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책을 보는 흉내를 낸다라. 신선했다. 신선하고 낯설었다. 낯선만큼 그의 존재는 내게 미지의 존재였고, 알지 못하는 존재였고, 공포였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대화의 시간이 짧게 끝나도록 조절한 나는 그 날에 받았던 충격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습관이고 일상인 어떤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하기 싫은데 애써 하는 어떠한 포장과도 같은 모습이 될 수 있구나. 그 일이 있고서, 책을 주제로 소통하는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아주 잠시 경계심을 가져야 했다. 사람들 중에는 사람의 영역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사고를 가진 특이한 존재들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그 날의 충격적인 만남에 대해 조금 생각할 시간을 가진 다음에는 알 수 있었다. 아마 그는 그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이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기에,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또 다른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알 수 있었고, 또 서글퍼졌다. 타인의 눈에 보이는 자신을 꾸며내기 위해서만 살아야 하는 그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생각하니 안타까워 서글퍼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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