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뜻 대로 안되니까, 그게 세상이지

직장생존기

by 은호

출근을 했다.


누구나 하기 싫다는 출근. 나도 대세에 따라 출근을 싫어하는 걸로 하고, 억지로 억지로 그런 걸음을 옮겼다. 일을 하러 가는 길이 힘든 것은 누구나 다 같을 테니까. '그럼, 나는 조금만 덜 싫어해볼까.' 그렇게 해볼까. 어차피, 내가 안해도. 일하러 가는 길을 엄청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있으니까. '그래.'


마음을 조금 조작해서 일하러 가는 길을 덜 싫어 하기로 했다.


그러나 때때로, 개인의 노력이 아무리 많이 쌓여 있다고 해도, 내가 아무리 애쓰고 힘쓴다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내가 속한 부서가, 그리고 내가 속한 팀의 일의 강도가 힘든 편이라 출근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서 미리 일을 해두지 않으면 부서 전체, 혹은 속한 사업부 전체의 업무가 잘 안 굴러갈 우려가 있다. 그런 곳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과중한 노동을 해야 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약간만 다르게 보면 내가 이 사업부의 진퇴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것. 그러한 의미도 될 것이다.


그렇게, 이 자리 이 곳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나 혼자, 원래는 우리 팀이 함께 조기출근을 해야 함에도, 나 혼자 조기출근하여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불평도 내비친 적이 없었다.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으니까. 그렇게 이 어느 날도, 그렇게 조기출근해서 한 시간 가량을 애써 일을 해낸 날이었다. 그렇게 평소처럼.


그러나 평소와 같지 않은 말이 내게 들려왔다. "오늘 다른 팀을 좀 도와줘야 겠다." 응? 그게 무슨 말이래?


우리 부서의 상사는 매우 어두운 낯빛을 하고 천천히 해야 할 말을 했다. 우리 부서의 옆 팀에 결원이 생겼다더라. 그 팀의 그 결원을 낸 친구는 유명하지. 여자친구를 만나러 일을 못하겠다. 쉬게 해달라. 내일이 월요일인데 월요일에 출근을 못한다. 왜냐고 물으니 예비군 훈련이 있다고 한다. 그렇구나.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왜 미리 말을 하지 않았느냐. 그냥 그랬단다. 그런 친구였다. 직장을 학교 동아리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은 친구랄까.


한번은 회식자리에서 관리자급 상사들 대여섯 명이 모였는데 그 친구를 넘겨주겠다며 서로 건네고 사양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런 비극적인 트레이드가 성사되지 못한 희극적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다른 부서에도 그 친구 못지 않은 애들이 몇 명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각자의 폭탄을 들고 있는 관리자들의 입장에서는 내 폭탄을 주고 다른 폭탄을 받는 것이, 이미 알고 있는 폭탄으로 고통 받는 것과 새로운 폭탄을 통해 새로운 고통을 받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래요?" 옆 팀의 그 친구의 이번 사정은 뭘까. 어디 훈련이라도 가는가? 또 여자친구가 도망갔나? 또 잠수탄 여자친구 잡으러 가야 한다나? 이번 사정은 좀 더 신선했다. "연휴라서 놀러갔는데 숙소를 잘못 계약해서 하루 더 쉬고 와야 한단다." 그렇다고 한다. 무척 신선했다. 역시 대단해. 대단한 J. 놀라운 친구였다. 심지어 이 친구 말고도 옆 팀에는 결원이 한 명 더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다. 내 정신의 건강을 위해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이제 내게 당면한 문제는 그 팀에 오늘 야근이 길게 잡혀 있다는 점이었다. 자정을 넘겨야 할 이야기. 그렇다면 내일은? 내일은 정상출근이란다. 이 말은. 지금 내가 퇴근-퇴근이 아니라 출근이 취소된 것이지만-을 하고 집에 간다고 하여도, 출근준비와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이 세 시간 가량, 그리고 조기출근해서 일해 놓은 한 시간 조금과, 업무준비를 하는 데 걸린 시간 약 삼십여 분. 다해서 약 다섯 시간 정도. 다섯 시간 정도를 쉬지못한 상태에서, 다른 팀을 위한 정식 출근을 조금 있다가 해야 한다면, 내일 정상업무까지 나는 32~36시간 정도를 연이어 일하는 상태가 되게 된다. 물론 그 사이에 서너 시간 정도의 공백이 생기지만, 집에서 쉰다고 해도 한두 시간 정도 잘 수 있을까.


회사는 이렇다. 이런 곳이지. 부조리하고 정당하지 못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면, 그 뒷감당은 다른 사람들이 하게 되고.


어쩔 수 있나.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해야겠지. 그렇게 나는 이틀간의 업무를 사흘처럼 하고 나서 완전히 녹초가 되어 버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녹초가 되어 그 다음의 삼일 동안 시간이 나는 모든 내 일정동안 잠만 자야 했다. 엉망진창인 일상.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보아야 하는 일상.



겨우 찾아온 주말의 전날. 나는 이 휴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고민을 해야 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기로 한 모임. 약속. 그런 것들이 잔뜩 준비된 주말이었다. 기대하고 기다렸던 날들. 그런데 내 상태는 눈꺼풀을 올릴 때 버벅이는 느낌이 드는 정도의 피로감이 쌓인 상태. 그런데 이번 주말은 특별히 일정이 많이 쌓여 있던 주말.


아주 잠시 고민을 하고, 나는 대부분의 그 일정들을 소화하기로 했다. 억울하니까. 힘들게 모은 체력을 직장의 빌런들 때문에 날려먹기만 하면 아쉽지 않은가. 약을 챙겨먹고 건강을 북돋아서 준비된 약속들 대부분에 참석했다. 그리고 다시금 깨달았다.


사람으로 입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물론 몸은 지치고 피로는 가득가득 올라와 눈을 뜬 채로 버티기조차 힘들었지만,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두 시간 예약해 놓은 장소에서 마감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지는 게 아쉬워 집으로 가는 길을 잘못 올라버린 사람도 있고, 서로의 이야기가 너무 좋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얼굴을 보다가 지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힘든 시간 만큼이나 좋았던 좋은 사람들과의 시간.


어려운 것은 있다. 살면서 어려운 일이 없을 수는 없으니까. 힘든 일도 있겠지. 그렇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견디기 괴롭고 보기 싫은 사람들 만큼이나 좋은ㅅ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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