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를 불러주세요. -1

도와줘요

by 은호

일을 하다가 일이 너무 잘 될 때. “응?” 하고 나도 모르게 내 버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갑자기 왜 이러지?” 직장은 이런 곳이 아니잖아. 안돼야지. 잘 안돼야지. 힘들어야지. 괴로워야지. 뭐 하나 하려고 하면 방해가 곳곳에서 들어와야지. 그래야 직장 아닌가?

직장이 안락하고 평온한 안식처가 되지 않기 위해서,

직장은 필연적으로 빌런을 그 구성원으로 삼고 있다.

내가 맡고 있는 업무에서 나는 7년 동안 한 가지 일만 해 온 선배와 한 팀을 짜고 있다. 7년 동안 한 가지 일을 맡아온 그에 비해 나는 지금의 일을 맡은 지 잊 반 년이 겨우 되어가고 있었다. 한 팀으로 같이 일을 하는 그 선배는 일을 하면서 업무 발주를 정하는 동안 오늘도 나에게 물어 본다. 오늘 몇 묶음이나 필요할 것 같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긴 압니다.) 몇 개나 주문할까. 주문 최대량이면 되겠는데요. 그렇게나? 그렇겐 필요 없어. 괜히 물량 남으면 우리가 곤란해져. 그럼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 두 묶음 정도만 줄이자. 네, 그러세요.

나한테 매번 물어보면서, 매번 내 대답이 어떻든 간에 마음대로 하면서, 그렇게 왜 매번 물어보는 절차를 거치는지 의문이지만, 내 대답을 들을 때까지 끊임없이 질문을 하기 때문에 못 들은 척 할 수도 없다. 못 들었다고 생각하면 들었다고 느낄 때까지,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물어볼 테니까.

그러다 결국 물량이 남아서. 주문량이 과도해서 탈이 난다. (그럴 줄 알았지). 어쩌죠. 아, 너무 많이 주문했어. (그렇죠. 그럴 것 같았죠.) 아, 네.


직장이라는 곳은 이래. 원래 이런 곳이야.


바른 말을 해도 혼나. 일을 잘 해도 탈이 나. (쟤는 왜 저렇게 나대니.) 열심히 하면 입소문 타. (쟤는 왜 혼자 저래.) 일을 잘 못하면 불려가. (너는 왜 일을 왜 그렇게 해.) 쉬는 날에 쉬면 쉰다고 한 소리를 듣지. (넌 어제 일을 안 나온 거야? 못 나온 거야?) 쉬는 날에 일하면 일한다고 한 소리 듣지. (혼자 일하냐?)

출근을 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났는데, 두통 날 일이 없으면 괜시리 불안해진다.

(뭐지? 내가 뭘 잘못 인지하고 있지? 무슨 이변이 있나? 왜지? 왜 아무런 일이 없지?)

직장의 다른 이름은 빌런 소굴이라 빌런이 없으면 직장이라는 곳의 정체성이 흔들리니까. 직장이 직장답기 위해서는 빌런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부 단체, 종교 단체 뭐 그렇게 되어 버리는 것 아닐까. 직장은 원래 괴롭고 고통스럽고, 끔찍한 곳 아닌가? 그 고통과 끔찍함이 사람의 형태를 하고 말을 하는 것을 우리는 빌런이라고 부른다.


(미션 : 오늘도 적의 공격에서 살아남아라.) (네. 근데 그게 가능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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