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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Oct 02. 2024

언제까지 나와 함께할 텐가.



요즘은 디지털 세상이다 보니 스마트폰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울 지경이다. 이제는 생활필수품보다 더욱 필수적이어서 필수품의 목록에서도 보이지 않는 스마트폰.


기능의 다양성과 한계가 없다시피 한 꾸밈의 다양성 덕분에 이제는 스마트폰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반영해 주기까지 이르게 되었다. 어떤 앱을 설치하여 두고 바탕화면을 어떤 형태로 두고 있는지 등등. 이제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조차 반영하게 된 스마트폰.




나는 물건을 오래도록 쓰는 편이다. 잘 고장나지 않고, 잘 망가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기능을 덜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사용하는데도 오래 쓰는 편이다. 예를 들면, 나는 지금 문구용 컷트칼 하나를 약 4년 째 사용하고 있다. 칼날을 교체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이런 나의 성향으로 내가 고통을 받는 것이 스마트폰에 대해서이다. 


세상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바삐 바뀌고 있고, 신형 스마트폰은 매년 새로 나오고 있다. 새로운 기능이 나오고 새로운 기술이 들어간 신형 모델을 보면, 기술 변화에 민감한 나는 물론 새 제품을 사용해 보고 싶어진다. 그러나 어쩌나. 스마트폰 모델을 바꾸고 싶어도, 지금 쓰고 있는 이 모델이 고장나지 않는 걸.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스마트폰은 아주 오래된 모델이다. 디자인이 최근 것보다 마음에 들고 무엇보다 색깔이 마음에 들어서 최신 모델을 쓰다가 다시 돌아와 버렸다. 구형이니까. 이 모델이 수명이 다할 때까지만 써보자 싶었다. 


그런 이 구형 모델의 문제점이 하나 있는데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는 점이었다. 평소에도 하루를 버티려면 완전히 충전하기를 최소 서너 번은 해야 하고, 때때로는 하루종일 충전기에 연결해 두어도 잠시만 사용하면 배터리 잔량이 60, 70으로 떨어지곤 했다.


그래. 배터리 소모를 견딜 수 없으면 그때는 포기하자. 바꾸자. 그래 싶었다. 배터리는 내가 어쩔 수 없으니까. 잘됐다. 배터리의 수명을 내가 이 기기를 그만 쓰게 되는 것의 기준으로 삼자.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러다, 하면 안 되는 짓을 해버렸다.


평소 생각만 해보고 도전할 생각은 많이 없었던 그것. 핸드폰 배터리 자가교체를 해버린 것이다. 스마트폰 모델들은 대부분 한번 뚜껑을 열 때 감안해야 할 요소들이 많다. 접착 성분, 연결 커넥터 등등, 등등. 자칫 잘못하면 기기가 고장 날 수 있다는 위험성 때문에 더욱 망설여지게 되는 배터리 자가교체. 망가질 수도 있다는 위험성. 자가교체 동안 보이는 두려움. 집중이 필요한 위험성. 아이폰 제품이 패킹에서 접착성분으로 기기 결합능력을 올린 이후, 기기에 대한 접근은 시도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 충분히 오래 쓴 기기이기에 한번 도전해 보았다. 충분히 사용도 하였기 때문에. 하루에 완충을 최소 번. 많게는 일곱 정도 해야 한다는 것. 사용하는 마음의 일부에서는 이미 기기는 수명을 다한 것으로 생각한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좋아." 드디어 때가 되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계속 쓰고 싶은 예쁜 디자인의 스마트폰 모델. 충분히 사용하고 손에 익어 사용감이 좋은 제품. 사용할 만큼 사용하다 보니 이제 스마트폰으로써의 기능을 수행하기엔 너무 불편하게 된 배터리 상태. 그리고, 위험에 도전하기에 충분할 만큼의 건방진 도전 심리.  


좋아. 필요물품이 택배로 도착한 그날의 새벽. 일이 끝나질 않아 집에 도착했을 무렵엔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피로하고 피곤하고, 이래저래 지쳐 있던 그날. 컨디션이 좋은 날에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다. 이런 일은, 해보지 않은 이런 일은 컨디션이 좋다고 해서 잘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위험을 회피하려는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 것. 자정을 넘어가는 동안, 핸드폰을 분해했다. 그리고, 


한 시간 하고 조금 더.


잘 보이지도 않게 작은 나사들을 조심스레 꺼내어 겨우 분리해 낸 배터리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전원을 켜기까지. 기기가 잘 동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절반인 채로 진행했다. 정확한 순서를 확인하기 위해 부품 제조사에서 제공한 영상을 일곱 번 정도 보고 동작과 과정을 숙지했다. 부품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주변 공간을 깨끗이 청소하고 조명도 준비했다. 동작을 때마다 동작이 맞는지, 정확한지, 괜찮을지를 정도 체크한 다음 동작을 실행했다. 그리고 100% 만족스럽진 않은 과정이 끝났다. 배터리의 접착 성분을 제거하는 동안 뒤편의 상황을 모른 진행하다 보니, 무선충전 장치의 구리선을 약간 손상시켜 버렸다. (그래도 괜찮아.) 나는 무선 충전을 안 쓰거든. 


한 시간 하고 조금 더, 그렇게. 배터리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교체하는 김에 배터리 용량도 늘어났다. 약 15% 정도?) 결합까지 마친 다음. 외견으로는 그리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잘 살펴보면 보이는 흔적이라면 최초의 분리 작업에서, 그 작업이 익숙지 않아 만들어 버린 긁힌 흔적 정도? 교체를 완성한 아이폰을 두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원 버튼을 켰다. 그리고 극적으로 보이는 새하얀 바탕의 사과 마크. 동작이 안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럴 것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고 각오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작이 되었다. 다행이다. 그리고 큰일이다.



이제 이 핸드폰은 언제 바꿀 수 있을까. 배터리마저 교체가 가능해져 버리면 이제 핸드폰을 버리고자 해도 명분이 없게 되었다. 이제 핸드폰을 바꾸기 위해서 나는 나에 대해 어떤 핑계를 준비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하면 안 되는 짓을 해버렸다. 할 말이 없구나. 


별 수 없지. 한두 해 더 잘 지내보자. 

(영원히 헤어지지 못한다 해도, 뭐 어쩌겠어. 함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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