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째 천식을 앓는 사람의 감상문
"환자분은 오랜 시간동안 아주 천천히 안좋아져왔기 때문에 본인이 불편한 걸 느끼지 못할 뿐이지, 원래 멀쩡하다가 환자분 정도의 폐기능이 되면 앰뷸런스에 실려와도 이상하지 않아요."
내가 할 수 있는건 "오.."정도의 감탄사였다. 약이 잘 안듣는 것 같아서 간만에 서울대병원을 갔더니 거의 입원을 해야 하는 취급을 받았다. 폐기능 62%. 다시말해 폐의 3분의 1 이상을 못쓴단 소리였다. 다만 입원은 죽기보다 싫었고, 10만원이 넘어가는 약을 처방받고서는 집으로 돌아왔다. 듣도보도 못한 약들과 꽤나 익숙한 약들이 섞여있었고 대충 약봉투에 적인 설명서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말했다. "텃네 텃어. 중환자네 이거." 천식을 20년을 넘게 앓으면 알고싶지 않아도 웬만한 내과의보다는 천식에 대해 알 수밖에 없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상태가 별로 좋지 못했다던 나의 본격적인 천식 발작은 7살때였다. 새벽에 숨이 차서 눈을 떴더니 이미 엄마와 아빠가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병원에 실려갔고, 덜컹거리는 구급차에서 나와서는 포카레스웨트를 찔끔찔끔 마시다가 멀미였는지 몰라도 병상에다가 토를 했다. 어렸던 그때는 그 느낌이 뭔지 잘 몰랐지만 조금 떨어진 의자에서 날 바라보고 있던 엄마의 표정을 보고서는 사람이 늙는단게 어떤건지 좀 알게 된 게 아닐까 싶다. 눈앞에서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피한 것들이 있을때 사람은 늙는다. 다행히 뼈가 부러져도 금방 붙을 아동기였기에 나는 레뷸라이저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금방 호전되었고, 빠르게 퇴원을 했다.
세레타이드, 벤토린, 싱귤레어, 심비코트, 플루테롤, 베로텍, 테올란비서방, 호쿠날린 패치, 렐바.. 모두 천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처방되는 약이다. 그리고 이젠 자부심마저 느낄 정도로 시중에 나와있는 웬만한 천식약들은 다 써봤다. 다만 무신론자임에도 아폴론이 실재한다면 내게는 완치의 은혜를 베풀 생각은 없는 듯하다. 사실 나아지질 않으니까 이 약 저 약을 다 돌려돌려가며 써본 거다. 엄마는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천식에 좋다는 수영을 보내기 시작했고, 아빠는 배가 천식에 좋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배즙을 박스째로 사왔다. 하지만 투병생활 26년의 내가 말할 수 있는건 단 하나뿐이다. 천식은 내 노력과 운이 손잡고 트리플악셀을 하지 않는 한 완치되기 힘든 불치의 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서울대병원의 알레르기 내과에서, 어린 애들부터 노인들까지 하염없이 자기의 진료순번을 기다릴 리는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이런 내 몸뚱아리에 처절한 자괴감이라던가 자격지심을 느껴본적은 없다. 감상문이라고 해놓고 무미건조해서 미안하지만 멀쩡히 살았다. 얼마 못 살고 죽는게 아닐까란 엄마의 걱정과는 다르게, 나는 아기때부터 악착같이 먹었고 악착같이 숨쉬었댄다. 다른 애들처럼 축구를 하지도 못했고 달리기는 젬병에 약 좀 안먹었다 치면 숨넘어갈 정도로 쌔액쌔액거리긴 했지만. 소외감은 느껴봤어도 그게 그렇다고 나의 인생을 좀먹을거라는 어떤 불안감으로 작용한 적도 없다. 혹은 그 모든 걸 느껴봤는데 이제는 너무나 당연해서 홀라당 까먹어버렸거나.
천식이 어떤 느낌인지 약이 무슨 맛이 나는지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진짜 질병적으로 숨이 막히는 내 앞에서 숨이 막힌다는 표현을 쓰는데 있어서 눈치보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무례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거겠지. 동정심같은게 없는 그냥 순수한 호기심은 처절한 우울함이나 자격지심에 매몰되어있는 사람들에게나 잔인하지 정말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된 사람에겐 별 느낌이 없다. 동정만 사양이다. 그건 마치 다가온 명절의 잔소리랑 비슷해서 할 거면 입금은 해주고 했으면. 멀쩡한 남을 갑자기 연민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사람들은 자격지심 심한 사람들만큼 꼴볼견이다.
그리고 이제 안다. 30대는 나와 같진 않더라도, 어느 누구나 자기만의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나이다. 그저 구태여 묻지도 말하지도 않을 뿐. 좋은 집안에 태어나서 잔병치례 하나 없이 건강하게 살아온 사람이 존재할 수는 있지. 하지만 정말 소수고, 다들 신체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숨 막히는' 걸 느끼지 않은 적은 없다. 믿었던 사람에게 잔인한 말을 들은 사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 악착같이 노력했음에도 그 결과가 실패라는걸 알아버린 사람, 의도치않은 사고로 하고싶은 걸 못하게 된 사람. 천식은 약이라도 먹으면 되지, 가슴을 주먹으로 친들 후련해질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굳이굳이 말하자면 천식은 그 불가피함이 기관지에서 나온다. 숨을 더 들이쉬고 싶은데 들이쉬어지지 않고, 더 내쉬고 싶은데 잘 내쉬어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게 염증반응으로 인한 증상이기 때문에 기관지를 확장시키고 염증을 완화시키지 않으면 그대로 심해지다가 기관지가 막혀 죽는다. 막상 이렇게 들으면 굉장히 엄청난 불치의 병 같기는 한데 어떤 질병이든 다스리지 못하면 치명적인건 매한가지 아닐까.
교수님 중 한 분은 내 폐기능 검사를 보고서는 말했다. "좋지 않긴 한데, 그래도 꾸준히 약 먹고 관리하면 본인 수명대로 살 수 있기는 해요." 가지고 있는 사연이 얼마나 구구절절하더라도 방법을 찾고선 움직이는 사람이 좋다. T같은 소리인데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아프면 약을 먹는거지. 세상이 숨막히면 숨통을 트일 만한 걸 찾는거고, 사람에게 숨막히면 도망도 쳐보는 거고. 몸이 먼저든 마음이 먼저든, 매몰된 채로 아무것도 못하다간 둘 다 새카만 밤이 찾아와서는 해가 떠도 보지 않으려고 하게 되니까.
숨 쉬기 힘든 세상이지만 살면 또 살만한게 세상이라.
저마다의 약을 찾고서 나름대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 글의 끝까지 와준 당신들에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