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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시형 Mar 03. 2019

여행은 어느 순간 '일'이 되어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처음 여행을 떠났던 건 2002년 국내 무전여행이었다. 

그때 목적은 아주 순수하게도 '멋진 사진'이었다.


 첫 해외여행은 2006년이었다. 

그때의 목적 역시 순수하게 시작된 '요리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물론 그때 나이에 걸맞기 위한 어느 정도의 합리화는 필요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 있어서 여행은 여행 자체에서 느낄 수 있는 무언가. 

혹은 여행을 가야지만 얻을 수 있는 그런 목표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행이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2009년 말부터였다.

여행을 가기 위해 기업에서 진행하는 대외활동에 지원하고, 이벤트에 응모하고.

그런 것에 선정되기 위한 나의 무기는 '지난 여행들'이었다. 


그 지난 여행들을 어떻게 가공하고 포장해서 콘텐츠로 만들어냈는지,

그 콘텐츠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나 '덧글', '공유'가 발생했는지,

나를 뽑아주면 남들보다 훨씬 멋진 여행을 하면서 지난 여행들처럼 멋진 결과물로 만들어낼지를 보여주고 설득하는 과정들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여행은 내게 여행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이고 설렘이었지만 한편으론 '일'이 된 순간.








스타가 된 것 같았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공모전, 이벤트에 선정되기 시작하니 그것들이 다시 레퍼런스가 되어 내 경쟁력을 키워줬다. 원하는 지역이든 아니든 여행을 보내주는 행사라면 무조건 지원했고 선정 확률도 점점 올라갔다.

더 많은 기회가 찾아왔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거절하거나 따로 돈을 벌 시간이 없어서 거절한 경우도 있었다. 

항공권만 당첨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땐 배가 불러서 제세공과금을 내기가 아까워 그냥 버린 항공권도 있을 정도였다.


그땐 지금의 콘텐츠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들과 같은 대우를 받진 못했다. 

지금의 경우라면 여행을 보내주는 건 당연하고 콘텐츠에 대한 비용까지 제법 쏠쏠하게 지원해주지만 그땐 그냥 여행을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 줄 사람이 많았다.


그때도 지금 같았다면 난 전업 블로거 혹은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길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기쁨의 순간은 금세 허무로 바뀌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여행이 설렘보단 귀찮음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다.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내 관심사보단 대중의 관심사, 대중에게 필요한 정보, 후원사가 홍보하고 싶은 정보들에 더 집중해야 했고 여행지에서 즐기고 느끼고 끝나는 것이 아닌. 다녀온 후의 가공 과정이 더 많아진 그런 여행.

과연 이 일? 이런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난 그 여행을 그만뒀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단 생각이었다.




<아르헨티나 바릴로체의 노을>
<일본 후지산, 한국 전주 한옥마을> 




그래서 떠났던 것이 김치버스였다.


김치버스를 생각한 건 2009년이었지만 그것을 꼭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건 2011년이었다. 

김치버스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여행, 사진, 요리, 사람, 술'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돈이 필요했고 난 기업의 후원을 받기로 했다.


그 결과 아이러니컬하게도 김치버스 역시 순수한 나만을 위한 여행, 내가 좋아하는, 하고 싶어 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진 여행이 아니라 기업의 후원으로 인해 무언가를 해줘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렇게도 '일'에서 벗어난 여행을 추구했지만 결국 현실과 타협을 한 셈이었다.




언젠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

'출장으로 외국에 나가는 사람은 정말 좋겠다'는 생각.


어차피 한국에 있어도 일하는 건데 외국에 나가서 수당도 좀 더 받고 남는 시간에 여행도 즐기고

알게 모르게 쌓여가는 마일리지도 즐기고. 


그런 안일한 생각은 김치버스로 국내에서 외식업을 하면서 깨졌다.

중국 청도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출점 건으로 3박 4일간 출장을 갔던 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큰 부담이었다.

출장비를 내서 간다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 돈은 그대로 낭비가 된다는 부담.

국내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팀원에 대한 미안함 등 여러 가지로 자유롭지 못했다.


그때 느꼈다.

'일은 일이고 여행은 여행이구나. 여행하면서 일하거나 일하면서 여행하는 건 쉽지 않겠다.'



정말 이제는 '일'이 아닌 여행을 떠나고 싶다.


 


이런 글을 쓰면서도 5월에 떠나는 '류시형 작가와 함께 떠나는 코카서스 여행'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는 걸 보면 난 정말 표리 부동한 사람이면서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진다. 이번에도 일처럼 느껴질까. 아니면 그 안에서 여행을 발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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