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쇼트
아담 맥케이 감독의『빅쇼트』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융 위기에 대해 다룬다. 실화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어떻게 그토록 어마어마한 규모의 위기가, 얼토당토않은 과정을 거쳐서, 무시무시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냉소적이며 신랄하게 파헤친다.
미국 경제가 가장 호황이던 시기에, 몇몇 인물은 현상을 냉철히 파악하고 정확히 진단한다. 이토록 화려한 경제를 이루고 있는 기둥이 부실한 거품으로 가득하다는 확고한 진실을. 그리고 확신을 갖고 정반대에 배팅한다. 바로 미국 경제의 폭락 쪽에.
대부분의 사람(경제 전문가와 금융 전문가)들이 말도 안된다며 비웃고 그들을 멍청한 호구라고 생각할 때, 그들은 결정을 내리고 끝까지 관철한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천문학적 막대한 부를 거머쥔다. 세계 경제의 대몰락을 예언한 대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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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나는 투명한 무지 속에 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낯선 언어 앞에서, 마치 번역되지 않은 외국어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무지는 순수와 같은 말이 아니다.
생존이란 단순히 숨을 쉬고 음식을 먹는 생물학적 지속이 아니다. 현대의 생존은 시스템을 이해하고, 그 작동 원리를 간파하며, 그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내는 일이다.
야수 자본주의의 포식성 앞에서, 순진함이란 결코 강점이 될 수 없다. 세상을 읽는 언어를, 숫자 뒤에 숨겨진 욕망의 문법을 이해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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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의 금융위기는 거품이 터진 사건이었다. 그런데 거품이란 무엇인가. 물리학적으로 보면, 거품은 표면장력이 만들어낸 얇은 막으로 둘러싸인 공기 덩어리다. 아름답고 무지개빛이지만, 건드리면 사라진다. 그 덧없음이야말로 거품의 본질이다.
미국의 부동산 시장도 그런 거품이었다. 모두가 집을 가질 수 있다는 꿈, 집값은 영원히 오를 것이라는 믿음. 마치 개츠비가 바라본 푸른 불빛처럼, 손에 닿을 듯하면서도 아득했다. 하지만 개츠비의 꿈이 결국 환상이었듯, 그 집값 상승도 허상이었다.
영화 속 몇몇 인물들은 이 거품의 허상을 꿰뚫어보았다. 그들은 예언자였을까, 아니면 파괴자였을까. 카산드라처럼 진실을 말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고, 결국 그들의 예언이 현실이 되었을 때 그들만이 이익을 얻었다. 진실을 아는 것과 진실로부터 이익을 얻는 것 사이의 윤리적 간극.
그들의 생존 방식은 냉혹했다. 다른 이들의 파멸을 예견하고 그것에 배팅하는 일.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 시스템 속 생존 법칙의 본질이다. 탐욕스런 인간들의 탐욕과 무지한 인간들의 무지, 근시안적 사고와 안일함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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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고도로 정교한 언어 체계다. 그 언어를 모르는 자는 자동으로 피식자가 된다. 마치 플랑크톤이 고래의 입속으로 빨려들어가듯. 그런데 이 언어는 의도적으로 어렵게 만들어졌다. 진입장벽이 높을수록, 내부자들의 이익은 더 크게 보장되므로.
진입장벽을 높이기 위해 어려운 용어를 만들고, 일부러 복잡한 상품을 내놓는 이리들의 속내를 꿰뚫어야 한다. 용어를 익히고, 본질을 파악하고,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 은행은 우리의 친구가 아니고, 창구 직원이 추천하는 상품은 나를 위한 게 아니라, 본인의 실적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나는 은행 창구에서 적금 상품을 권유받을 때마다 이것을 실감한다. 담당자의 친절한 미소 뒤에는 실적 압박이 있고, 그 상품이 내게 유리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것이 슬픈 이유는, 그 담당자 역시 시스템의 한 부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인.
여기서 생존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시스템을 거부하고 순수함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적응할 것인가. 하지만 진정한 생존은 제3의 길에 있다. 시스템을 이해하되 그에 동화되지 않는 것, 게임의 룰을 알되 게임에 지배당하지 않는 것.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진실은 원래 냉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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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일이 아니다. 세상의 작동 원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동시에 세상의 잔인함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아담의 선악과처럼, 앎은 순진함의 상실을 전제한다.
『빅쇼트』의 등장인물들이 진실을 깨달았을 때 느꼈을 감정을 상상한다. 분노, 절망, 아니면 냉소. 진실을 아는 자는 고독을 견디기 어렵다. 모든 사람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는 것뿐이니까.
하지만 이 고독이야말로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무리를 따라가는 것이 편안할지는 몰라도, 그것은 진정한 생존이 아니라 단순한 생존 본능의 발현에 불과하다. 적자로 생존하려면 매뉴얼을 익혀야만 한다. 공부하지 않는다면, 나도 범람하는 사태의 한가운데서 그대로 휩쓸려 잠겨 죽은 수많은 사람 중 하나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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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된다. 쓰나미는 반드시 다시 온다. 중요한 것은 대비하는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대비는 단순히 재테크 공부나 경제학 습득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것은 세상을 읽는 능력, 현상 뒤에 숨겨진 본질을 꿰뚫어보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생존의 경제학에는 공식이 있다. 무지는 취약성이고, 각성은 고통이며, 수용은 성숙함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사랑이 있다. 시스템을 증오하지도 맹신하지도 않으면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끌어안는 것.
어찌됐거나 지금은 『빅쇼트』가 조금 더 잘 이해가 된다. 『빅쇼트』의 진정한 가치는 금융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복잡성을 직시하게 만드는 데 있다. 그 복잡성을 받아들이면서도 절망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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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에서 각성으로, 각성에서 수용으로, 수용에서 다시 사랑으로. 이것이 생존의 경제학이 제시하는 진화의 단계다. 만약 내가 그 당시 미국민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다음 위기가 왔을 때, 나는 물에 잠기는 개미가 아니라 파도를 타는 서퍼가 될 수 있을까.
답은 지금 이 순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