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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융한삶 Apr 02. 2024

날지 않는 새를 날게 하는 법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류시화



어느 나라의 왕은 근심이 가득했다. 소중히 아끼는 매 한 마리가 결코 날지 않기 때문이었다. 왕은 매를 날게 하는 이에게 큰 상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수많은 이들이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매는 결코 가지를 벗어나지 않았다. 왕이 크게 낙담했을 때, 한 농부가 나타나 새를 날게 했다.


농부는 어떻게 한 걸까?






어느새 서른 셋.


작은 도시의 작은 동네,

작은 동네의 작은 학원.


그 학원의 ‘부원장’ 직함을 받을 때까지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나,

명함을 전부 쓰레기통에 쳐박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마치 서서히 끓는 냄비 속의 개구리 같았다.


천천히 익어가는 줄도 모르고, 

느긋하게 반신욕을 즐기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직장이 나를 

영원히 책임지지 않음을 냉혹히 깨달았고,


막막함을 넘어 먹먹함만이 느껴질 때,

비로소 떠나야 할 때임을 확신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아름다운 뒷모습도 아니었고,

아무런 박수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 문을 닫는 이의 초라하고 적막한 사라짐.


그렇게 2023년의 겨울,

그동안 몸 담은 직장을 떠났다.


떠날 때 받은 작은 퇴직금으로

자전거와 카메라를 구매했다.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며 영상을 촬영하면서

방황하며 앓던 방향 없던 원망은 차츰 가라 앉았다.


백석 시인의 말을 빌려


‘나보다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니’

결국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었고, 모든 책임 또한 내게 있었다.


그간 만족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취했던 안주는 내 선택이었고,

그로 인한 퇴보는 당연한 결과였다.






농부가 한 일은 별 게 아니었다.

그저 새가 앉아 있던 가지를 부러뜨렸을 뿐.


새는 그제야 비로소 

크고 아름다운 날개를 활짝 펼쳐 창공을 활공한다.


새장 속에서 누리는 안온한 삶이 틀렸다고 할 수만은 없지만,

그것은 결코 새의 본질이 아니다.


쇠렌 키르케고르는


사물과 달리 인간의 본질은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적었다.


하지만 나는 인간의 본질은 ‘자유’라고 생각한다.


모든 본질적 의무들의 소거 끝에는

오로지 자유로운 선택만 남기 때문이다.


연필은 기록을 위해, 전화는 연락을 위해, 침대는 안락을 위해 존재한다.

쓸모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사물의 존재 가치는 없음과 같다.


마찬가지로 인간 존재는

자유라는 본질을, 내재된 가능성을, 선험적인 잠재력을 향유하고 누려야 한다.


구속과 제약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스스로 의미와 가치를 정의하고 부여해야 한다.


나를 받치고 있던 썩은 나뭇가지가 잘리고 나서야

그간 제대로 사용한 적 없던 날개를 파닥이기 시작했다.


비록 이 날개짓의 시작이 미미할지라도,

그 끝은 자유롭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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