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
학생들과 대화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꿈이 뭐냐고 묻게 된다.
어느새 나도 답이 없는 질문으로
상대를 난감하게 만드는 꼰대가 된 듯하다.
어쨌거나 내 착한 학생들은 기꺼이 답해준다.
보통은 의사, 공무원, 교사, 변호사 등의 대답이 나온다.
하지만 직업은 꿈이 아니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그것도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
직업은 명사다.
명사는 달성해도 끝이 아니다.
그렇게 이룩한 명사로 뭘 할 건지가 중요하다.
꿈은 라이프 스타일이다.
하루의 시간을 어디에 사용하면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알아야 한다.
한강뷰 시그니엘 발코니에서 한강만 쳐다본다고,
롤스로이스 운전석에 앉아 핸들만 붙잡는다고,
마르지엘라 풀착장을 온몸에 휘감는다고,
결코 삶이 저절로 굴러가지 않는다.
시간, 공간, 인간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꿈꾸는 하루는 어떤 모습인가.
알람 없이 아홉 시쯤 느긋하게 일어나
창문 열어 환기하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명상한다.
고양이를 챙기고, 간단히 식사하고,
도서관에 가거나 산책 또는 수영을 한다.
돌아와서 씻고 든든히 점심을 먹는다.
편하게 입고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문학·철학, 인문학도 좋고,
수학·해부학, 자연과학도 좋고,
심리학·경제학, 사회과학도 좋다.
3-4시쯤 2-30분 정도
낮잠을 자고 가볍게 저녁을 먹는다.
7시쯤 주짓수를 하러 체육관에 간다.
10시쯤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이 가득한 욕조에 잠겨 멍을 때리고
두유, 견과류, 블루베리 등을 먹는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가
1시쯤 침대에 눕는다.
요루를 쓰다듬으며
충만한 감사를 느끼며 잠에 든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살고 싶은가.
우선 용산에 살고 싶다.
국내 최대 IMAX 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파트 높은 층에 살고 싶다.
꼭대기 층이면 더할 나위 없다.
집 근처엔 산책로가 있어야 한다.
질 좋은 산책과 자전거 라이딩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주말에는 테니스, 라이딩, 서핑 등등
다양한 레저를 즐긴다.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가.
어떤 사람과 교류하고 관계 맺고 싶은가.
나와 비슷한 결, 유사한 재질의 사람이었으면 한다.
집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고, 산책을 좋아하고, 예술을 좋아하고,
명상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하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
순하고, 소박하고, 부드럽고, 고요하고, 평온한 사람.
현재의 나는 아직까진 비혼주의자므로
적당한 사람이 없다면 그냥 혼자 살아도 좋다.
꽤나 낭만적이지만,
이 청사진엔 뭔가 빠진 듯하다.
‘대체 일은 언제 하지?’
평일 내내, 하루 종일, 심지어 주말까지,
팽야팽야 놀기만 한다고?
무슨 돈으로 매일매일
사치와 호사를 누릴 것인가.
이때 필요한 게 ‘목표’다.
꿈꾸는 라이프 스타일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 해결책.
하루를 경영하고 시간을 운용할 실질적 자구책.
먼저 원하는 생활을 지속하기 위한
비용을 계산하고 이를 역산한다.
그 삶을 영위하기 위해
숨만 쉬어도 필요한 고정 비용부터 파악해야 한다.
고양이 밥값, 모래값, 식비, 커피값,
영화 티켓값, 도서 구매비, 주짓수 관비, 교통비,
휴대폰 요금, 인터넷 요금, 관리비, 주거비, 수도세, 대출 이자 등등등
이 모든 소비를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위해
직업과 소득, 저축이 필요하다.
직업을 단순히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어떤 형태든 상관 없지만,
내가 좋아하고, 잘 하고, 잘 맞고,
의미까지 있다면 더욱 좋다.
그러려면 먼저
나라는 인간을 알아야 한다.
나라는 캐릭터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파악하려면
상당한 경험과 대화, 그리고 소비가 필요하다.
여러 경험을 통해 나는
나라는 인간을 조금씩 이해했다.
초중고 생활, 기숙사 생활, 대학 생활, 동아리 활동,
음식점 알바, pc방 알바, 옷가게 알바, 일용직 알바,
군대 생활, 공장 생활, 강사 생활, 장기 연애…
다양한 외부 경험을 통해
세계에 대한 여러 정보를 수집하고,
부단히 산책하고 일기를 쓰며
내면 자아와 소통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에 대해 이해가
하나 둘 깊어진다.
나는 육체 노동을 싫어하는 인간이구나,
나는 단순 반복을 경멸하는 인간이구나,
나는 얕은 관계를 질려하는 인간이구나,
나는 일희일비를 멸시하는 인간이구나,
나는 지적 허영을 좋아하는 인간이구나,
나는 영적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이구나,
나는 깊은 유대를 선호하는 인간이구나,
나는 상선약수를 지향하는 인간이구나,
등등…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 누적될수록
호와 불호의 경계가 뚜렷해진다.
그리고 소비를 통해
스스로의 취향과 선호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소비는 단지 돈 쓰는 재미가 아니라
뚜렷한 취향을 찾고, 주관적 선호를 쌓는 재미다.
나의 호불호를 파악하기 위해
자주 스스로 밸런스 게임을 해야 한다.
취향과 선호가 충분히 누적되면
주관식이든 객관식이든 즉답할 수 있게 된다.
소울 푸드 : 순대 국밥
햄버거 vs 피자 : 피자
가장 좋아하는 색깔 : 블랙, 아이보리, 그레이+네이비.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 : 나이키, 애플, 스투시.
인생 책 : 내면소통, 지대넓얕0, 불교는 왜 진실인가
인생 영화 : 기생충, 인셉션, 매트릭스, 인터스텔라, 라이프 오브 파이
베라 최애 셋 : 민트 초코, 엄마는 외계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포카칩 오리지널 vs 어니언 : 한 개씩 사서 둘 다 먹는다.
등등등..
쉬워 보이는 대답이지만
꽤나 오랜 시간에 걸쳐 생성된 결론이다.
물론 대답은 앞으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당연히 변화하는 대답 또한 환영이다.
사실 나는 내 꿈을
이미 절반 정도를 이뤘다.
알람 없이 일어나고,
아침부터 오후까지 원하는 시간을 보내고,
식단도 나름 건강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낮잠도 잔다.
욕조는 없지만 아파트에서 고양이와 함께 살고,
용산은 아니지만 근처에 아이맥스와 천변 산책로가 있다.
오후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운동을 한다.
아직까진
백 퍼센트 자유롭지 못하지만
현재의 시간을 투자해
미래의 시간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정리하자면 나는
사유와 자유가 가장 중요하다.
시간에 맞춰 사는 삶이 아닌,
의지에 따라 사는 삶을 추구한다.
궁금하다.
언젠가 나는 지금 내가 꿈꾸는
온전하게 자유로운 삶의 모습을 일궈낼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저 오른발은 현실로 걷고, 왼발은 이상으로 걸으며
계속해서 조금씩 나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