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가
2022년 6월,
처음 작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뭣도 모르고
‘저작권으로 먹고 살 수 있다!’
‘김이나처럼 유명해질 수 있다!’
‘전국민이 내 가사를 따라 부른다!’
라며 설레발을 쳤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윤기나는 직업에 부합했고,
남들이 모르는 멋진 취미를 배운다는 점도 기분 좋았다.
가볍게 시작했지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작사 관련 작법 책들을 여러 권 사서 보기도 했고,
클래스 101에 공개된 강의들을 결제해서 듣기도 했다.
작사샘의 갑작스런 이직으로 강의료가 두 배 넘게 뛰었을 때도
부단히 투자한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지불했다.
가끔 듣는 특강도 신선했고,
함께 스터디 하는 친구들도 참 좋았고,
간간이 서울에 모여 교류하는 경험도 소중했다.
합평회, 영화의 밤, 서울 모임, 주말 스터디…
무엇보다 이런 세계를 함께 구성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새 작사는 취미가 아닌 목표가 되었고,
욕심이 커진 만큼 갈증은 심해졌다.
압박과 강박.
하루 대부분을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응시하며
완성이라는 목표를 겨냥하고 있었다.
주객이 전도된 내 시간은
가루처럼 흩어지고 녹아서 사라졌다.
무엇보다 곡의 완성이
더 이상 뿌듯함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
해냈다는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몰입 역시 없었다.
그저 또 한 곡을 처리했다는
초라한 안도감이 들 뿐이었다.
그렇게 의미를 찾지 못한 제자리 걸음이 반복됐다.
처음 일 년간 먹었던 쑥과 마늘은 달콤했다.
새로운 배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적응, 새로운 시간, 새로운 경험, 많은 게 새로웠다.
하지만 단맛이 빠지고 남은 실체는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생각보다 지루하고 지독했다.
발매될 곡을 먼저 들을 수 있는 특권은
말 그대로 특별했다.
하지만 웹툰을 결제하지 않아도 결국 공개 되듯이,
내게 미리보기는 그다지 큰 메리트가 아니었다.
일주일의 유일한 빨간 날.
당장 내일까지 마감해 달라는 데모곡 요청에,
팔자에도 없는 아이돌의 교태와 애교를 목격하며,
취향에도 맞지 않는 노래를 무한 반복으로 청취하며,
어떻게든 발음·내용·라임을 어울리게 쓰기 위해 온몸을 비틀며,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 고양이와 놀지도 않고 집중이란 걸 해봤으나,
꼴랑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는 좌절감 때문에만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마감을 위해 거절했던 여러 친구들의 제안과,
완성을 위해 소비했던 만큼 잃어버린 독서에 대한 시간과,
작업을 위해 몰두했던 만큼 소홀했던 연인에 대한 태도와,
취미를 위해 충실했던 만큼 놓쳐버린 본업에 대한 기회가,
온전히 내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염치 없게도 후회와 원망이란 감정이
스멀스멀 밀려오려 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꽤 오랫동안
이 일이 즐겁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모든 권태기가 그러하듯
여러 단점들이 여러 장점들을 모조리 뭉개버리고 있다.
해서 나는 이제 용기를 내려 한다.
작사라는 세계의 긴 여행을 이만 마치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 현실을 마주하려 한다.
상대방 모르게 선언하는 절교처럼,
이룬 게 없는데 발표하는 은퇴처럼,
아무도 모르는 절필을 선언하려 한다.
다행히 후회는 없다.
사실 당연하다.
그놈의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2월이 끝나는 지점까지 쉬지 않고 발버둥 쳤으니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기에
이 실패가 오히려 아늑하다.
전체를 도려내는 게 아니라
일부를 들어내는 거라 생각한다면,
적어도 내가 순수했다는 사실은 드러나겠지.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사람이 강한 거라던데
나는 강한 사람은 아닌가보다.
지금 그만두면 언젠가
개연적으로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그만두지 않으면 언젠가
필연적으로 후회할 것 같기에 결단한다.
더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이제 나머지는
남겨진 다른 이들에게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