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민감자 도시를 떠나다

by 김유지


초민감자(HSP, Highly Sensitive Person)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마치 나를 위해 만들어진 단어 같았다. 늘 주변의 작은 소리에도 잠에서 깨어나고 영화 한 편에도 마음이 오래 흔들렸다. 예민하다고 쉽게 표현할수도있지만 그렇게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초민감자는 선천적으로 더 많은 자극을 받아들이고 깊게 처리하는 사람들인데 이 특성이 때로는 축복이지만 동시에 삶을 조금 더 까다롭게 만들기도 한다.


초민감자

어느 날 식당에 들어가 창가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고있었다. 점심시간이라 식당안은 사람들로 가득찼고 시장통같은 웅성거림은 얕은 물결처럼 겹겹이 밀려들었고, 빈 접시와 수저들이 부딪히는 소리는 마치 울림이 증폭된 메아리처럼 귀를 압박했다. 출입문 위에서 흔들리는 종소리는 짧지만 날카로웠고 누군가 테이블을 정리하는 동안 생긴 의자 끌리는 소리가 마침표를 찍듯 신경을 자극했다. 모든 소리가 일상적인 풍경의 일부일 뿐이었지만 견딜 수 없었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머릿속은 금세 시끄러워졌고 식사가 나오고 채 10분도 되지 않아 자리를 떠야 했다.


초민감자로서 이런 경험은 종종 반복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가는 배경 소음이 하나하나 분리되어 날카롭게 귀에 꽂히고 그 순간 머릿속은 복잡한 정보로 가득 찬다. 이런 날은 빨리 피로감이 찾아와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스스로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하고 자책하기도했다.


초민감자는 세상의 작은 변화에 누구보다 빨리 반응한다. 겨울바람의 결이 달라지는 걸 피부로 먼저 느끼고, 사람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에서 무언가 다른 점을 눈치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웃음소리 끝에 숨겨진 우울감을 발견하거나 대화 중 짧게 멈칫한 순간이 그 사람의 진심을 담고 있음을 읽어낸다.

감정의 깊이를 너무 많이 느끼다 보면 타인의 고통을 내 일처럼 느끼고 무거운 짐을 짊어진 듯한 기분에 빠질 수 있다. 감정이입은 초민감자의 장점이자 한계인데 사람들에게 너무 가까이도 멀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초민감자는 세상을 더 다채롭게 느끼는데 예민한 감각은 창조적인 작업에서 빛을 발한다. 이 민감함이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 때는 강력한 자산이 된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마음을 담아 세밀하게 풀어내는 작업은 이 세상의 미묘한 결을 포착하는 관찰자가 된다.


초민감자로 살아가기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사람들이 없는 고요한 곳에서 혼자 명상을 하거나 자연 속에서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일은 필수다. 긴 하루의 끝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들고 조용히 앉아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 또한 필요로 하며 감정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에너지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서도 한계를 지키는 법 그리고 스스로의 감정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스스로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이 섬세함이 세상을 조금 더 특별하게 바라보게 해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삶은 때로는 너무나 시끄럽고 빠르게 흘러가지만 그 안에서 조용히 나만의 리듬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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