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고요 속의 첫 균열 (1.2)

1.2 아내와의 인연, 닮은 우리

by silence voice

이 글은 《균열 그 너머 이야기》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을 때, 나는 말해야 했다.’

평범하고 고요했던 저의 세계에 생긴 하나의 ‘균열’ 앞에서,

아무도 방향을 알려주지 않을 때 더듬거리며

홀로 항로를 찾아 나섰던 한 사람의 내밀한 항해 일지입니다.

한 여름, 닫힌 철문 앞에 홀로 서야 했던 어느 사람의 이야기.

이제, 당신을 그 뜨거웠던 여름의 아파트 복도로,

굳게 닫혔던 문 앞으로 초대합니다.



아내는 지도교수 사모님의 소개로 만났다. 첫날, 그녀는 나의 서툰 손짓과 말의 파편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듯한, 낯선 호기심 가득한 귀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마음에 박혔다. 몇 번의 어색한 만남 끝에, 그녀가 무심코 던진 말. “원래, 말씀이 별로 없으시네요.”


그 후로 나는 좀 더 많은 음성을 내기 위해 애썼다. 나중에 아내는, 자신의 말을 듣고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다고,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본래 말이 많은 편은 아니다.


우리의 관계가 서로의 낯설음에서 친밀함을 갖기 시작한 건 극장에서였다.


어색한 침묵이 어둠 속에 녹아내리던 순간, 그녀의 손이 조심스럽게 내 손등에 닿았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내 손을 잡았다.


순간 온몸의 감각이 그 손끝으로 모이는 듯했다.


당황했지만, 그 온기가 싫지 않았다. 나도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나는 그런 면에서 늘 수동적인 사람이었다.


그녀가 먼저 내민 온기를 시작으로, 우리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다섯 달이 지나 우리는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나란히, 하얀 빛 아래 섰다


우리는 닮은 구석이 있었다. 말수가 적고, 시끄러운 것보다는 조용한 분위기를 즐기는 성향. 아내는 가끔 집에서 타로 카드를 펼쳤다.


신기하게도 내가 자신의 **영혼의 동반자**로 나온다며, 맑게 웃곤 했다.



나는 그 신비로운 세계를 알지 못했지만, 아내의 미소가 좋았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말이 잘 통했고, 외출할 때면 늘 손을 잡고 걸었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말이 필요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결혼 초, 아내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작고 귀여운 터키시 앙고라 아기 고양이를 가족으로 맞이했다.


녀석과의 첫 만남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퇴근 후 소파에 앉아 있는데, TV 뒤에 숨어 있던 새하얀 털 뭉치가 조심스레 다가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그 순간.


눈처럼 하얗고 보석 같은 눈을 가진 아기 고양이, 우리는 녀석에게 내가 좋아하는 단어인 '블루'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블루는 우리를 놀랄 만큼 잘 따랐다. 고양이를 처음 키워보는 서투른 집사였지만,

우리는 블루와 함께 여의도 공원을 산책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인형처럼 귀엽고, 너무도 아름답고 신비로운 푸른색과 노란색 눈을 동시에 갖고 있는 오드아이 블루.


산책하는 모습에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다가오면, 수줍음 많은 블루는 얼른 우리 품에 얼굴을 파묻곤 했다.


블루는 우리 부부에게 단순한 반려동물 이상이었다.


우리가 가끔 말다툼이라도 하면, 블루는 어느새 가운데로 와서 싸우지 말라는 듯 애처롭게 울었다.


늘 사람처럼 우리 곁 소파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고, 밤이면 아이처럼 우리 부부 침대 한가운데로 파고들어

매일 밤 우리와 함께 잠들어야만 잠이 드는, 소중한 가족이었다.


저의 항해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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