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 손때 묻은 보금자리, 집에 담긴 시간
이 글은 《균열 그 너머 이야기》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을 때, 나는 말해야 했다.’
평범하고 고요했던 저의 세계에 생긴 하나의 ‘균열’ 앞에서,
아무도 방향을 알려주지 않을 때 더듬거리며
홀로 항로를 찾아 나섰던 한 사람의 내밀한 항해 일지입니다.
한 여름, 닫힌 철문 앞에 홀로 서야 했던 어느 사람의 이야기.
이제, 당신을 그 뜨거웠던 여름의 아파트 복도로,
굳게 닫혔던 문 앞으로 초대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곳에 우리의 뿌리를 내리기로 결심했을 때, 우리는 낡은 공간에 우리만의 색을 입히기로 했다.
단순한 수리가 아니었다. 우리의 시간과 숨결을 불어넣는, 우리의 희망을 다지는 의식이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아내는 뛰어난 감각으로 밑그림을 그렸고, 우리는 꿈꾸던 모습으로 집을 채워나가기로 했다.
텅 빈 캔버스 위에 색을 입히듯, 우리의 손길로 공간에 숨결을 불어넣는 일.
바닥과 천장, 조명, 주방, 신발장, 중문, 방문 교체에 도배까지. 집의 속살을 전부 드러내는 대공사였다.
보통은 업체를 통하지만, 우리는 비용을 아끼고 우리 손길을 더 담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예쁜 조명을 찾아 을지로 조명 거리를 몇 번이나 헤맸고, 마음에 드는 타일과 벽지를 고르기 위해 샘플 북 속에서 길을 잃었다.
주방은 아내가 직접 도면을 그리고, 원하는 재질과 스타일을 골라 제작해 줄 업체를 찾아다녔다. 발품을 팔수록 공간에 대한 애착은 살갗처럼 달라붙었다.
전기, 목공, 타일, 도배… 각 공정마다 다른 기술자들을 섭외하고 일정을 조율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됐다.
공사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져 잠잘 곳이 마땅치 않아, 2주 가까이 낯선 호텔을 전전했다.
피곤한 몸을 뉘려고 호텔에 돌아와서도, 머릿속은 다음 날 공사 일정과 인력 스케줄, 디자인 수정 같은 생각들로 뒤엉켰다.
하지만 매일 현장에 들러 음료수와 간식을 건네고, 먼지 쌓인 바닥에 주저앉아 기술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스스로 진행 상황을 꼼꼼히 점검하는 동안, 공간은 조금씩 우리의 모습을 닮아갔다.
그 과정의 고단함 속에 작은 기쁨의 조각들이 숨어 있었다. 페인트와 톱밥 냄새마저 정겹게 느껴졌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그 힘든 시간을 함께 헤쳐나갔다.
마침내, 우리의 땀과 시간으로 낡았던 N 아파트는 꿈꾸던 모습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거듭났다.
공사 기간 중 조명만 달렸을 때, 아래층 이웃이 올라와 너무 예쁘다며 칭찬해주셨던 기억.
집 안의 마지막 커튼까지 아내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색으로 골라 달았을 때의 뿌듯함.
그래서 우리는 이 집에 이사 올 때, 단순히 새로운 주거지로 옮겨온다는 의미 이상의 설렘과 우리가 하나하나 만들어 완성한 이 공간에서의 행복함을 가득 안고 있었다.
이곳은 우리의 시간과 이야기가 깃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이사 후 양가 가족을 초대했을 때, 다들 집이 마음에 든다며 우리 집 사진을 찍던 모습에서 우리는 큰 보람을 느꼈다.
저의 항해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