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돌아오는 길이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따뜻해지던 날씨가 다시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햇볕은 있었지만, 바람 끝엔 여전히 겨울이 남아 있었다.
봄인지 겨울인지 애매한 기온 속에서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헬스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익숙한 길이었다.
똑같은 옷차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순서.
하지만 오늘은,
발끝부터 스며드는 찬기운이 이상하게 마음을 휘저었다.
운동 전 늘 그렇듯, 커피 한 잔을 사러 동네 골목 안 카페에 들렀다.
햇빛은 어느덧 건물 옆면에 반쯤 걸쳐 퇴근을 알리고 있었고,
퇴근을 시작한 몇몇 사람들의 구두 소리가 얕게 젖은 인도 위를 차분히 울렸다.
가게 안은 아직 고요했다.
바리스타는 주문받은 커피를 만들며 말없이 리듬을 탔고,
나는 그 앞에서 손을 모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재즈가
내가 잠깐쯤은 투명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따뜻한 커피를 손에 쥐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서도 아무 음악도 틀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의 말소리도,
내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말들도
막고 싶은 기분이었다.
운동은 평소처럼 흘러갔지만, 기구를 잡는 손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무게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는데, 몸은 느리게 반응했다.
머릿속은 흐릿했고, 가슴 안쪽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누가 그런 말을 했다.
"운동은 감정을 밀어낸다"고.
하지만 오늘은,
운동을 하면서도 감정이 자꾸만 배어 나왔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땐 시원한 맥주 한 잔이 떠올랐다.
목을 타고 천천히 내려가는 그 감촉이 이상하게 오늘따라 더 간절하게 그리워졌다.
하지만 연락할 사람을 떠올리다가, 정적처럼 길게 흐르는 침묵만 남았다.
전화할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생각도 조용히 접었다.
집으로 향했다.
늘 걷던 길이었다.
같은 가로등, 같은 횡단보도, 같은 공터.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은 그 길이 낯설고 길게만 느껴졌다.
걸음이 무겁고, 혼자 걷는다는 사실이 유독 또렷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가로등 불빛은 유난히 차가웠고, 골목 입구를 막고 선 가로수의 그림자는
내 발목을 길게 붙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편의점 앞에는 누군가 통화 중이었고, 그 웃음소리가 멀게 들렸다.
그들과 나는 같은 거리에 있지만 서로 전혀 다른 온도를 걷고 있는 것 같았다.
가끔은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별은 아직 보이지 않았고, 어느덧 달도 흐릿하게 출근을 하고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아주 조금 피어올랐고,
그걸 보고서야 오늘이 꽤 쌀쌀한 날이었음을 뒤늦게 실감했다.
집에 도착해 미지근해진 커피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자판 앞에 앉았다.
이런 날엔, 오히려 마음이 정리될 줄 알았다.
무언가 쏟아져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자판 위 손가락은 멈춰 있었고, 대신 마음 한가운데에 동그랗게 앉은 공허함이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별일 없이 지나간 하루. 하지만 그럼에도 이상하게 쓸쓸했고, 덜 정리된 감정이 가슴에 고여 있었다.
그럴 땐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어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 한마디가, 오늘 같은 날엔 생각보다 더 멀리 데려다줄 수 있으니까.
아무 일 없었던 하루도 가끔은 마음을 저릿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날은, 돌아오는 길이 유난히 멀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