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말은 없었지만,
사랑은 항상 거기 있었다

by Liar

3장. 말은 없었지만, 사랑은 항상 거기 있었다

그날도 우리는, 다퉜다.

정확히 어떤 말이었는지는 흐릿하지만,

사소한 말끝이 조금씩 날이 서더니, 결국 서로 등을 돌린 채 침묵에 잠겼다.

그 침묵은 차가운 것이 아니라 묘하게 무거웠다.

등 뒤에서 감정이 질척하게 따라붙는 것 같았다.

당신은 내게 등을 보였고, 나는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쾅, 하고 닫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딸깍.

마치 마음 하나가 천천히 접히는 소리처럼.

조심스레 감춘 뒤끝이었다.

문을 닫고 가만히 앉아 있는데, 부엌에서 익숙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스테인리스 냄비가 부딪히는 소리.

도마 위에서 칼이 무언가를 써는 규칙적인 탁탁 소리.

지글지글, 냄비에서 무언가가 익어가는 소리.

그 모든 소리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흐르고 있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건 화해 대신 건네는 다정함이었다.

문을 열었다.

말도 없이 놓인 밥상 하나.

된장찌개 한 냄비는 김을 피워냈고, 계란프라이는 딱 내가 좋아하는 정도로 노릇했다.

살짝 눅은 김과 시원하게 익은 깍두기, 그리고 밥.. 고슬고슬하게 뜸이 잘 든, 딱 내가 먹기 좋은 그릇 하나.

수저도 하나 뿐 이었다.

나를 위한 밥상.

내 자리.

당신은 아무 말 없이, 식탁을 정리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슬리퍼 끄는 소리가 짧게 지나가고, 문이 살며시 닫혔다.

그 너머에서 나는, 당신이 내내 참아 삼킨 말들이 가만히 숨처럼 고여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식탁 앞에 앉아 숟가락을 들지 못한 채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 국물보다 먼저, 뜨겁고 짠 감정이 목울대를 넘었다.

그건 눈물이기도 하고, 미안함이기도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나에 대한 꾸짖음 같기도 했다.

며칠 뒤, 당신이 머리를 염색하던 날이 있었다.

손거울 앞, 다소곳이 앉은 뒷모습.

정수리 위로 염색약이 검게 발려 있었고,

머리칼 사이사이로 보이던 두피가 왠지 더 훤하게 보였다.

나는 순간 그 휑한 틈이 왜 그렇게 낯설고 마음 아팠는지 모른다.

언젠가 두꺼운 고무줄로 높게 묶었던 풍성한 머리숱이 이제는 조심스레 눌러 담아야 할 무게로 변해 있었다.

거울 속 당신의 얼굴은 언제나 처럼 단단했지만, 그날따라 조금 더 피곤해 보였다.

당신은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그 고요함 안엔 분명히 시간이 흘렀다는 증거들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 자리를 오래 바라보지 못하고 괜히 TV를 켜거나 물컵을 들었다.

그저, 모르는 척 돌아서야만 내 안에 올라오는 감정을 겨우 눌러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이제야 안다.

사랑은 꼭 말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밥상 위 된장국 한 숟갈,

아무 말 없이 돌려진 이불,

감기 걸렸을 때 머리맡에 놓인 오렌지 하나.

그런 것들 안에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조용하게 담겨 있었는지를.

어릴 땐 그걸 몰랐고, 어른이 되어서도 한참 동안 눈치 채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말보다 더 크고 확실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사랑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에게 있었다는 걸.

그러니까,

혹시 지금도 말없이 당신을 바라보는 그 사람을 떠올린다면,

그 조용한 다정함을 너무 늦지 않게 안아주기를.

나는 이제서야

“잘 먹었어요.”

그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되돌려주는 말이었는지를 안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당신에게 괜한 투정을 부립니다.

다 안다고 말해놓고, 여전히 아이처럼 굽니다.

화, 목,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