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ENFJ다.
사람들의 감정 신호를 자동 인식하고,
즉시 머릿속에서 긴급 감정 회의를 소집한 뒤
가장 적절한 위로 문장을 출력하는 감정형 인간.
일명, ‘감정판독기’.
“나 좀 피곤한 것 같아...”
이 말은 들은 나는 하루 종일 생각한다.
“그 피곤함은 혹시 신체적인가요, 아니면 정서적인가요?”
머릿속에선 대화 로그 3일 치 복기 중...
관련 위로 문장 데이터베이스 호출 중...
“어제 잘 잤어?” 한마디에
진심이 다 들어가는 사람, 그게 나다.
하지만 가끔은, 나도 진심으로 피곤하다.
사람들이랑 수다 떨다
‘어 나 진짜 사람 너무 좋아~’ 해놓고
집 오자마자 ‘전원 OFF!'
마치 정전된 것처럼 침대에 그대로 쓰러진다.
가끔은 텔레파시로
'이제 좀 내버려 둬 줘…'
하고 싶지만, 어차피 그런 날에도
“너 오늘 괜찮아?”라는 톡엔 2초 만에 답장 보냄.
"나? 완전 괜찮지!“
왜냐고요? 감정 노동자라서요.
누가 울면 옆에 앉고,
누가 불편해하면 중재하고,
모임 만들고, 공지 올리고, 명단 정리하고,
끝나면 다들 집 들어가는지 확인하고 귀가...
이쯤 되면 혼자서는 못 사는 팔자라기 보단
그냥 내가 인간형 캘린더이지 않을까?
다들 퇴근하고 누워 있을 때
ENFJ는 다음날 아침 인사 톡을 생각하고 쓰고 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오늘도 파이팅!”
물론 아무도 답장 안 함.
근데 또 다음날 씀.
왜냐면 나도 모르게 쓰고 있음. 자동임.
근데 웃긴 건, ENFJ도 감정 못 숨긴다.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입꼬리는 미세하게 내려가 있고,
“진짜 괜찮다니까” 말한 후 1분 뒤 조용히 혼자 숟가락 내려놓는다.
(그리고 카톡 안 읽고 침대로...)
내 속마음은 늘 이런다.
‘야 우리도 감정이 있어!!’
‘어 근데 걔 울어... 달래줘야 돼...’
‘아니 일단 너부터 살리자고 제발!!!’
‘괜찮아... 난 나중에 울게...’
결국 나중에도 못 울고...
사람을 좋아하고,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는 이유로 가끔은 너무 많이 받아들이고,
그걸 혼자 소화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
그게 ENFJ지 않을까?
그래서 요즘 나는 나한테 말한다.
“넌 감정의 요정이 아니야. 그냥 감정 많은 인간일 뿐이야.
때로는 안 챙겨도 돼. 그게 인간이야.”
오늘도 감정 리모컨 없이 하루를 살아낸
나의 ENFJ에게 전해본다.
"정말 대단합니다."
"그리고 진짜 괜찮아."
감정 안 챙겨도, 오늘은 잘 살았어.
그래도 누가 울면 또 달려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