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사보하3_추억에 살아

평범한 사람의 보통의 하루

by 고요


오랜만에 제주에서 찍은 사진을 봤어. 그땐 항상 내 옆에 있던 사람들이 졸업앨범 속 오래된 사진처럼 낯설더라.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닌데 벌써 추억이 됐다는 게 조금은 씁쓸하네. 돌이켜보면 우리 참 재밌었는데.


남남이던 우리가 한 집에서 같이 밥을 해 먹고, 보드게임으로 설거지 내기해서 한 명한테 몰아줬잖아. 그렇게 열을 내면서 이겨놓고선 또 다들 착해서 조금씩 도와주던 뒷모습이 아직도 선명해.

그리고 우리 세화로 일출 보러 갔던 날, 하얀 등대 앞에서 텀블러에 담아 온 자스민티 마시면서 해가 올라오길 기다렸잖아. 있잖아, 난 이렇게 완벽한 일출을 보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눈부시고 붉은 해가 천천히 세상을 밝히는데 괜히 눈물이 나더라. 이런 감정이 처음이라 온전히 간직하고 싶다고 혼잣말하던 시간도 있었어.


내가 한창 한동리에 있는 빵집에 빠져있었을 때 서로 아무 얘기도 안 했는데 우연히 빵집에서 만났던 날, 나 진정한 제주도민이 된 것만 같았어. 이른 주말 아침에 동네 빵집에서 친한 이웃과 인사하는 내가 좀 멋있다는 생각까지 했어. 웃기지. 혼자 노는 게 가장 편하고 재밌었는데 어느새 같이 놀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지더라. 나는 나를 잘 아는 줄 알았는데 여기에선 하루에도 몇 번이나 낯선 나를 마주쳐. 이전까지의 나와는 다른 시간을 보내서, 그 모든 시간을 같이 기억할 사람이 있어서, 그래서 더 그리운가 봐.


다시 사진을 보니까 그래도 조금은 더 선명해진 그때의 우리가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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