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첫째가 아버지의 차가운 눈을 보며 얼어붙는 사이, 둘째는 대답 대신 아버지의 손을 있는 힘껏 물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아귀에 힘을 풀며 따뜻하게 웃었다.
"내 아들 맞긴 하네. 장군감이야."
들어왔을 때와 달리 신발장까지 배웅하는 이는 없었다.
첫째만이 홀로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친척들 몇몇이 앉은자리에서 손을 흔들었다.
날이 날인지라 택시가 없었기에 그들은 하염없이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평소대로라면 이쯤에서 찡얼거리기 시작했을 첫째도 오늘은 묵묵히 걸었다.
"왜 내가 그딴 낡은 집에 집착했을까" 라는 질문은 정당해 보였다.
아버지는 수억 원을 굴리는 사업체의 오너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종류의 질문을 오래 붙잡지 않았다.
마침내 정류장에 도착하자 그는 첫째에게 5만 원짜리 두 장을 건넸다.
"이걸로 집에 가라."
"아빠는요? 쟤는 왜 같이 안 가요?"
"남은 건 니 용돈 해라."
역시 첫째는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는 둘째를 데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아버지를 따라 도착한 곳은 둘째에게 제법 익숙한 곳이었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들어와 어머니에게 아들과 놀아주겠다며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오곤 했다.
아버지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안주와 술이 나왔다.
"한잔 따라봐라."
그가 맥주를 따르려 하자 아버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누가 왼손으로 술을 따르나."
그는 오른손으로 술을 따랐다.
의외로 물집에 시원한 맥주병이 닿자 고통이 줄어들었다.
아버지는 뜬금없이 회사타령을 했다.
"내가 회사차릴 때는 아무 것도 없이 시작했어... 깡이랑 투지가 전부였지.
근데 내가 오늘 그걸 너한테서 봤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시켜라."
그 말에 메뉴판을 봤지만, 먹고싶은 건 없었다.
그는 메뉴를 찾는 대신, 아버지에게 말했다
"화장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홀로 자욱한 담배 연기를 뚫고 화장실에 도착했다.
소변기 앞 타일에는 수많은 명언들이 적혀 있었지만,
언제나 그의 시선을 붙잡는 것은 딱 그의 눈높이에 새겨진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이라는 살벌한 낙서였다.
그 짧은 문장에 인생의 정수를 담아놓은 문장은 과연 명언이라 불릴 만했다.
진물이 말라버린 손을 조심스럽게 씻고 휴지를 붕대인 양 손에 둘둘 만 그는 화장실을 나섰다.
아버지는 씹던 안주를 내버려 두고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고, 그는 아무렇지 않게 그 자리에 앉아,
언제나처럼 반쯤 벗은 채로 노래 부르는 이상한 여자를 보며 멀쩡한 안주를 골라 먹기 시작했다.
어느새 누나들이 그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자신이 너무 귀엽다며 비명을 지르고 볼을 꼬집어대는 여자들을 헤치고 무섭게 생긴 아줌마가 왔다.
아줌마는 혀를 쯧쯧 차며 설탕 뿌린 토마토를 놓고 가려다, 그의 손을 보고 하얀가방을 들고와 능숙하게 응급처치를 했다.
말없이 하얀가방을 들고 가려는 아줌마의 등을 꼭 껴안았다.
아줌마는 언제나처럼 "왜 이라노"하고 가버렸다.
아줌마가 좋았다.
허락도 없이 자신을 만져대는 손길에 가끔 두려운 마음이 들 때면,
언제나 나타나서 자신을 안고 사람이 없는 방으로 데려다줬다.
그곳은 눅눅했지만, 그가 좋아하는 책이 가득했다.
책장 옆에는 지우지 못한 어린아이의 낙서도 있었다.
그가 언젠가 낙서를 가리키며 "누구? 누구?"하고 물어보았을 때,
아줌마는 한없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때 이후로 그는 아줌마를 만날 때마다
그 두꺼운 허리를 양팔 가득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