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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속의 노벨상, 고 김민기 선생님께

2024년 12월

by 고요한밤

김민기 선생님!

선생님 떠나신 지 벌써 5개월이 되어가고

올 한 해도 저물고 있습니다.

하늘나라 그곳에서 비로소 편안함에 이르셨는지요?

이제는 아무런 고통과 아픔 없는 곳에서

무한한 평안을 누리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유난히 뜨거웠던 올해 7월

선생님의 부고를 접했을 때가 떠오릅니다.

SBS 3부작 다큐의 말미에

흐릿하게 처리된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안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셨을 거라 이해하며,

그래도 긴 투병 힘 있게 버티시기를

기도해 왔는데 말이지요.

개인적으로 7월 16일 입국하여

17일 부친을 떠나보내고

20일 발인과 화장 봉안 절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그야말로 황망하고 아득하기만 했던 시간들이었지요.

그러고 이틀 후 선생님의 소식을 듣고는

멍하니 한동안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24일 발인임을 알고 정신과 상복을 추스르고

23일 아침 일찍 선생님을 뵈러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혜화동으로 향했습니다.

각종 화환이 즐비한 복도를 지나

이른 시각이라

다른 조문객이나 취재진들이 거의 없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선생님 앞에 조용히 섰습니다.

선생님은 두 팔을 양쪽 볼에 고이고

담배 하나 손가락 끝에 끼운 채

환한 미소로 옆쪽을 바라보시는,

선생님께 가장 잘 어울리는 사진으로

영정사진을 삼으셨더군요.

국화꽃 한 송이 영전에 올려드리며

당신의 영원한 평안과 안식을 기원했습니다.

상주셨던 조카 분과 아드님들께 공손한 인사를 드리고

총총 그곳을 떠나오던 그날, 그 기분,

그곳의 풍경들, 단상들이

아직도 가슴속에 선명하게 아로새겨진 듯합니다.


https://youtu.be/Oum-VT-hmcQ?si=o4UBq8uEvWfR5Sry

<작은 연못>


“푸르던 나뭇잎이 한잎 두잎 떨어져

연못 위에 작은 배 띄우다가 깊은 속에 가라앉으면

집 잃은 꽃사슴이 산속을 헤매다가

연못을 찾아와 물을 마시고 살며시 잠들게 되죠”

-‘작은 연못’ 노래 중


선생님의 삶과 노래에 관한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입니다.

가신 뒤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아직도 진행 중이랍니다.

한국의 한 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갑작스러운 비상계엄의 선포와

탄핵가결 후폭풍으로

추운 겨울 엄청난 인파의 집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아무것도 도울 수 없는

무력함과 미안함만 부여잡고서

분노와 슬픔으로 밤잠을 설칠 때에,

선생님이 거쳐가신 어둡고 암울했던

그 시대와 삶의 여정이

제 기억에 다시 살아옴을 느꼈습니다.

미술학도이셨기에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이 섬세하고 청아한 가사 위에

통기타 음률을 얹고 휘파람을 끼워 넣으셨던,

분신과도 같은 노래 한곡 한곡을 다시 들으며

당신을 지칭하는 공연기획자, 학전소극장 대표 등

각종 세상적 직함들보다

한국 최초 싱어송라이터로,

특히 소박하고 아름다운 우리말 언어의

작사가이자 가수로 당신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https://youtu.be/3Fhhw3QbG3c?si=H8xvKOAuBOIQW1a2

<잃어버린 말>


“잘리운 가로수는 말을 하였고

무너진 돌담도 말을 하였고

빼앗긴 시인도 말을 했으나

말 같지 않은 말에 지친 내 귀가

말들을 모두 잊어 듣지 못했네”

- ‘잃어버린 말’ 노래 중


선생님은 70년대에 여느 동네든 한둘은 있을 것 같은,

말쑥한 차림이 어울릴 듯한

20대 대학생 오빠의 모습이었겠지요.

어두운 시절 퍼져나간 노래로 인해

당국의 압박으로 야학, 공장노동자, 농사꾼, 광부 등

삶의 치열한 현장으로 떠돌아야 했고,

한편 역설적으로 그림, 음악, 동시, 연극, 뮤지컬 등

여러 문화적 영역을 자유롭게 새처럼 누비셨던

수십 년의 궤적을 찾아보며

지금의 세대는 그야말로 선생님께 빚진 게

너무도 많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https://youtu.be/h7ajkVg2fpw?si=GBP-o0fl0pKG1VwN

<천리길>


“출렁이는 밤하늘 구름엔 달 가고

귓가에 시냇물 소리 소골소골 얘기하네

졸지 말고 깨어라 쉬지 말고 흘러라

새 아침이 올 때까지 어두운 이 밤을 지켜라”

-‘천리길’ 노래 중


선생님은 정작 본인의 낮은 목소리가

노래 부르기에는 적합지 않다 하셨고,

공개된 자리에서 노래를 절대 하시지 않았다 들었습니다.

하지만 음반 속에 남겨진

당신의 그 잔잔한 음성 속에서

선생님 내면의 열정과 분노를 비롯한

여러 감정들을 함께 생생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참 희한하지요?

선생님이 대학 시절 ‘친구’ 노래로 유명해지실 적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20년은 더 아래인 제가

그 호흡을 느끼고 공감한다는 것이 말이죠.

세상이 당신과 당신의 노래들을

올드하다 고리타분하다 여길지라도

영원히 후대에 남아 계시리라 믿습니다.


https://youtu.be/OyVg9c6RQSc?si=-5PRHFMDdNGeEwXC

<그 사이>


“해저무는 들녘 하늘가 외딴곳에

호롱불 밝히어둔 오두막 있어

노을 저건너에 별들의 노랫소리

밤새도록 들리는 그곳에 가려네

이리로 또 저리로 비껴가는 그 사이에

열릴 듯 스쳐가는 그 사이 따라”

- ’그 사이‘노래 중


제 삶의 다음 기착지가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곳 미국 땅에 머무는 동안,

그리고 숨 쉬며 살아가는 동안

선생님이 남겨주신 귀한 노래들로

위로받고 힘내고 살아가겠습니다.

영원한 청년의 모습으로 마음속에 살아계실 선생님,

계시는 저 세상에서도 이 대한민국을 위해,

조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 기도해 주세요.

이 나라가 전쟁과 계엄, 유신 독재 등

구시대적 악습과 잔재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희망찬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에요.

선생님이 그렇게 아끼셨던 어린아이들이

대를 이어 살아갈 내일의 세상이

선생님의 노랫말대로 찬란히 빛이 나길

소망하는 제 마음 아시지요?

대답 대신 커다란 함박 미소로

지긋이 바라보실 선생님의 표정을 그려봅니다.


https://youtu.be/6r4ku6TJ-jU?si=4V4_7L_vfCbxRXE7

<눈산>


“한없는 넓음도 높고 깊고 쭉 뻗음도

내린 눈 속에 사라졌구려

환하던 모습도 일그러진 얼굴도

깔린 어둠 속에 사라졌구려

어둠이여 밝음이여”

-‘눈산’ 노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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