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을 기다리며
1.
유년기부터 서구식 학제로 교육받은 아이에게는
매년 9월이 새로운 학년의 시작이라 기억되었겠지.
내 머릿속 깊숙이 묻어 두었던
몇십 년 묵은 낡은 시곗바늘의 감각으로 느끼기에,
매년 2월은 졸업과 마무리의 시기였고
3월이야말로 새로운 챕터의 시작이자
본격적 개학, 개강의 시즌이었어.
집안의 난방 온도를 높이며
으슬으슬 추운 날씨를 하루하루 참아내다가
두꺼운 외투의 느낌이 어색하다 싶어질 요즘에
벌써 마음 한켠에 찌르르 신호가 오곤 해.
어느새 앙상한 나뭇가지에 꽃망울이 맺히고
한껏 만발할 시점을 조용히 준비하는 때가 지금이라고.
꼬꼬마 어린 시절 3월 2일 개학을 앞두고
반질한 포장지나 흰 달력을 이용해
빳빳한 새 교과서 표지를 감싸던 기억부터 시작하여
꽃잎이 흩날리던 캠퍼스의 구석구석을
나름 차려입은 미니스커트 차림에
또각또각 하이힐 뒷굽으로 찍고 다니던 대학 시절까지
내 눈 앞에 삼삼하게 살아나 다가오곤 해.
2.
바람꽃이 날리고 해가 길어져 가고
이젠 이 길을 밤새 걸어도 걸어도
손 끝이 시리지가 않아
무거운 너의 이름이 바람에 날아오르다
또다시 내 발끝에 떨궈져
아직 너도 날 떠나지 않는 걸까
아주 가끔은 널 잊고 하루가 지나고
아주 가끔은 너 아닌 다른 사람을 꿈꿔도
나의 마음에선 너란 꽃이 자꾸 핀다
가슴에 no no no no 아픈 네가 핀다
아무도 모를 만큼만 그리워하며 살았어
소리 내 울었다면 난 지금
너를 조금 더 잊을 수 있었을까
아주 가끔은 널 잊고 하루가 지나고
아주 가끔은 너 아닌 다른 사람을 꿈꿔도
나의 마음에선 너란 꽃이 자꾸 핀다
가슴에 no no no no 아픈 네가 핀다
나의 입술로 너의 마음을 말하다 운다
우리 사랑이 멀리 흩어져 간다
너 하나쯤은 가슴에 묻을 수 있다고
계절 몇 번을 못 지나 잊을 거라 믿었는데
지금 이 거리엔 너를 닮은 꽃이 핀다
또다시 no no no no 시린 봄이 온다
<꽃이 핀다>
김이나 작사 김도훈 작곡 케이윌 노래
https://youtu.be/TQ6TEAp7pug?si=alHiTYksGUSrzz9u
3.
몇 년 전 유지태와 이보영이 주연이었던
‘화양연화’란 드라마가 있었어.
대학시절과 20년 후 현재 시점이 교차되며
두 남녀의 엇갈린 시간들과
그 과정이 이어졌었지.
드라마의 끝까지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진달래와 벚꽃이 흐드러진 캠퍼스 속에서
내게도 그런 화사한 시절이 잠시 존재했었어.
재수의 과정 없이 한 번에 대학을 갔고,
남학생들이 수백 명 우글우글한 학과에 갔으니 말이야.
개강 전 오티에서부터 선배와 동기들 그 틈에서
홍일점으로 혼자 있었어서 뭔가 우쭐하고,
당시 촌티나는 외모와는 절대적으로 무관하게
나 자신이 특별한 인물이 되었단 착각에도
한동안 빠져있었던 것 같아.
이후 책으로만 알던 연애사가 시작되고
음주로 인한 늦은 귀가와 수업들 지각, 결석에
한편으론 매 학기 등록금을
여러 아르바이트로 충당해야 했던
몸도 맘도 어두웠던 그 시절,
마음속은 뭔지 모를 분노와 반항심이 이글거리고
결국 나 자신으로 향하는 불만으로
가득 차다 못해 넘실거리며 폭주하던 시기였어.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