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독백 2

Invisible to the Naked Eyes

by 고요한밤

1.

2000년대 초반 북아일랜드에서 지냈던 때였어.

남편은 바쁘게 유럽 각국을 넘나들며

장단기 출장을 수시로 다니던 시절이었고.

나야 어린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돌보고

놀아주다가 자장자장 재우는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애엄마의 일상이었지.

온 천지가 고요한 그 야심한 시간에

아기 방에서 아기를 토닥토닥 재우고 있노라면

주방 쪽에서 쿵쿵쿵 툭툭툭 뭔가 소리가 들렸어.

외풍이 세서 모든 문과 창문을 닫아두었기에

외부에서 무언가 들어올 리가 없는데.

주방에 뭐가 있는 건가 불을 켜보면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기에 그게 더 오싹했어.

주방 한쪽에 세워둔 쌀포대에 구멍이 나있고

쌀알이 흩어져 있는 것만 제외하면

집에 귀신이나 유령이 나타났나 했을 거야.

밤새 그 쿵쿵쿵 소리를 들으며 불안해하다가

벌레 수준이 아닌 최소 쥐 종류 동물일 거라 짐작하며

도대체 어떤 종류, 어떤 형체, 어떤 크기의 생물체가

나와 아기가 먹고살아야 하는 주방에 침공했는지,

날이 갈수록 야간의 공포와 긴장이 커져만 갔어.

한동안은 낮시간에 겨우겨우 아기 먹을 거만 만들곤

정작 나는 식욕이 바닥으로 떨어져서

냉장고 속 안전한 과일들 위주로 연명하며 버텼어.

이사 가기 전에 겨우 알아낸 사실은

주방 한쪽에 설치된 세탁기 뒤가 문제였어.

세탁기의 수도관이 벽에 뚫린 구멍으로 연결되었는데

그 구멍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커져갔고

그 사이로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던 다람쥐가

어두운 주방에 들어와 쿵쿵쿵 소리를 냈던 거고

불을 켜는 순간 들어왔던 구멍으로 후딱 숨어버리니

사람의 눈에 뜨일 리가 있나.

(이 또한 추정일 뿐이고 정확한 실물 대면은

이사 나오는 그날까지 이루어지지 못했어)

그 구멍 쪽에 대충 판자를 대놓은 이후론 잠잠해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한 막연한 공포의 기억이란

수십 년이 지나도 그 낯선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


2.

아기가 무럭무럭 아동으로, 청소년으로 자라나고

새로운 곳으로의 이동과 적응을 해야 했던 시간들,

망가진 내 건강을 겨우 추스르면서도

마음속엔 늘 가지 못한 길,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

여러 아쉬움과 한탄이 존재했어.

공지영 작가의 단편 작품집 중에

비 오는 밤에 긴 머리 풀어헤치고

미친 여자 마냥 집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는 표현이 있었지.

내가 딱 그랬었어.

홍콩의 고층 아파트에서 발코니 아래 펼쳐진

검푸른 바다를 내려다볼 때도 그랬고

미국에서 철저히 섬처럼 고립되어

하루 내내 또는 그 이상 아무 말도 안 하고 혼자 지낼 때나

아이가 관련되지 않은 으른들끼리의 대화가 그리울 때,

잘 나가는 친구, 선후배들의 좋은 소식들을 접할 때,

안 그래도 낮은 자존감이 바닥을 뚫고 내려갈 때면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포의 기억은 다시 살아나서 나를 덮었어.

남편은 남편대로 회사와 글로벌 현장에서 활약하며

그만의 커리어를 탄탄히 쌓아나갔지.

남편의 초고속 승진과 각종 대우가 좋아질수록

하나의 지우개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 있잖아.

남의 더러움을 깨끗이 없애주면서

정작 본인은 지우개 찌꺼기처럼

서서히 닳아 없어지는 것 같은 초조함.

물론 전업주부로서 나만이 느꼈던 기분은 아니겠지.

그렇게 나의 시간을 갈아 넣어 오늘에 이르렀다네.


3.

불꽃처럼 살아야해 오늘도 어제처럼

저 들판의 풀잎처럼 우린 쓰러지지 말아야해

모르는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행여나 돌아서서 우리 미워하지 말아야해

하늘이 내 이름을 부르는 그날까지

순하고 아름답게 오늘을 살아야해

정열과 욕망 속에 지쳐 버린 나그네야

하늘을 마시는 파초의 꿈을 아오

가슴으로 노래하는 파초의 뜻을 아오


-<파초> 유영선 작사 이건우 작곡 수와진 노래


https://youtu.be/Rj3Nj3v7z8Y?si=IjkgvfLtw0KcmJV8



요즘 내 생각의 흐름에서 느끼는 건

이제껏 살아온 짧지 않은 시간들을 통해

여러 구비를 통과하고 조금은 철이 들었길 바라며,

앞으로 남은 삶의 시간들을 어떻게 채워갈 것인지,

건강을 유지하며 삶을 가지런하게 정돈하는 방법 등등

매번 1순위를 나 자신으로 놓기 시작했어.


<다음편에 계속>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