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독백 3

20년 시간의 틈새에서

by 고요한밤

1.

잠시 짧은 일정으로 중국 땅에 와 있어.

20년 전 살았던 이곳 심천 땅에 다시 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야.

2년 전에 10년짜리 멀티 방문비자를 받아둔 덕에

언제든 올 수 있게 되었고

올 때마다 도시 발전의 속도를 실감하곤 해.

각종 신축 고층 빌딩들이 빽빽한 풍경만도 생경한데

지금은 도로 위 모든 차량이 전기차로 대체되면서

매연이나 소음이 없이 아주 쾌적한 환경이 되었어.

20년 전엔 도시 개발이 본격 시작될 즈음이라

곳곳에 교통 정체와 공사 분진들, 소음과 악취로

정신없이 힘들어했었어.

6년 간의 영국 생활을 마치고 이사한 탓에

모든 것이 런던 때와 비교되면서

아이의 등하교와 먹거리 쇼핑 등 기본적인 것들부터

신경이 바짝 곤두서기 시작했던 것 같아.


광둥 지역은 우리가 흔히 아는 한자(번체)가 아닌

간체(Simplified Chinese)를 사용하고.

광둥어 방언도 따로 있으니 까막눈 까막귀였어.

지금은 영어 중국어 동시 표기가 늘어났지만

20년 전엔 그런 것도 따로 없었지.

거기다가 아이 납치 유괴 관련 썰들 때문에

항상 더 긴장하고 화장실 혼자 보낼 때조차 겁이 났어.

그때만 해도 인접한 홍콩이 모든 면에서

중국보다 발전되고 좋아 보였기에

한 시간쯤 페리를 타고 홍콩 땅에 내리면

뭔가 자유의 땅에 온 듯한 기분이었어.

영어도 통하고 깨끗하고 위생적이고

아이 교육을 위해서도 홍콩이 더 낫다고 여겼어.

서점에서 중국선 구할 수 없는 영어책들을 사서

이고 지고 심천으로 돌아오면서

부족한 나의 언어와 자유롭지 못한 환경을 탓하며

(그땐 마음의 위안이었던 싸이월드마저 불통이었어)

언어적, 문화적 측면에서 전혀 문제가 없는

바쁘신 남편 그분께 더더 의존하게 되었지.

그래서 중국어를 공부해야겠단 생각을

일찌감치 접게 된 듯해. 본의 아니게 말이야.


2.

이제는 홍콩과 심천의 격차가 더욱 커졌어.

홍콩이 정체된 상태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심천은 거침없이 미래로 질주하고 있어.

전 세계 초고층 건물 건축용 크레인이

두바이와 심천에 있다고 하니

60층 이상 초고층 빌딩들이 계속 들어서고 있고.

물가 대비 심천이 우위를 갖다 보니

이제는 홍콩 주민들이 심천으로 돈 쓰기 위해 들어오지.

거기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할 정도로

각종 첨단 기업과 스타트업의 활약이 빛을 발하고

청년 인재들이 각처에서 모여드는 곳이 되었어.

그 덕분에 안면인식 기술이 일상 속에 들어와 있고

현금이나 카드를 쓸 일이 없도록 전자 페이가 갖춰지게 돼.

구걸하는 거지조차 핸드폰을 내밀 정도라니 말이야.


이번 방문엔 번역기 앱을 돌려봤어.

중요한 식사 자리에 초대받아

양해를 미리 구하곤 틈틈이 핸드폰 화면을 참조하며

대화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 있었지.

약간 몇 박자 느리긴 했지만

거의 실시간으로 통번역되는 걸 보면서

문득 20년 전을 떠올려보게 되었어.

그때 이런 앱들이 개발되었더라면

이곳에서의 생활이 그렇게 팍팍하진 않았겠지?

남편만 그렇게 바라보고 살진 않았겠지?

홍콩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만세삼창하진 않았겠지?

나의 게으름과 무신경으로 흘려보낸 시간들 동안

세상은 이렇게 달라지고 빠르게 변해 간다는 것을

이제야 알고 다시금 느끼게 되네.

내 나이 5학년이 지나고 나서야 말이야.


3.

아주 멀지 않았던 날에

그대가 곁에 있던 날엔

햇살 가득 거리에 푸른 잎 무성하고

이 세상 모든 게 기뻤었지


아주 멀지 않았던 날에

그날도 오늘 같던 하늘

함박눈 갑자기 내려 온 세상 덮어도

이 세상 모든 게 따뜻했지


힘들지만 만나면 기뻤었지

세월 지나 슬플 줄 알면서

언제인지 모를 이별 앞에

언제나 손을 잡고 있었지


이젠 모두 지나간 시절에

아직도 그리운 그 모습

따스하던 너의 손 내음이 그리우면

가끔씩 빈손을 바라보네


아주 멀지 않은 그곳에

그대가 살고 있겠지만

그대 행복 위해 내가 줄 것이 없어서

갖지 않고 그저 지나지


힘들지만 만나면 기뻤었지

세월 지나 슬플 줄 알면서

밤늦도록 추운 거리를 걸어도

언제나 손을 잡고 있었지


이젠 모두 지나간 시절에

아직도 그리운 그 모습

따스하던 너의 손 내음이 그리우면

가끔씩 빈손을 바라보네

가끔씩 빈손을 맡아보네

-<애수> 故이영훈 작사 작곡 클래지콰이 노래

https://youtu.be/du_WaV05SyA?si=Ch7s_ceZWKMCgU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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