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합니다
1.
개인적으로도 애정과 감회가 남다른
나희덕 시인의 시집 <파일명 서정시>에서
내 마음에 콕 박혀온 작품들이 있었으니.
살아오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거대한 슬픔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 시간으로 2014년 4월 15일 오후였다.
수학여행을 떠나던 학생들을 실은 큰 페리 여객선이
해상에서 침몰하고 있다는 속보를 접하고,
긴급 구조가 신속히 이뤄지겠지 라는 생각만 있었다.
그저 빨리 또 다른 소식이 전해지길 바라던 때에
전원 구조의 뉴스가 떴다가 오보라고 나오며
경악과 긴장으로 억지로 잠을 청했던 그날밤이었다.
그다음 날 아침 뉴스는 눈뜨자마자
침통한 망연자실의 상태로 이끌었으며,
아이 학교 같은 학년 엄마들 모임 약속이 있어
모임 장소인 대저택으로 가는 중에도
계속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한국 엄마로는 유일한 참석자였기에,
하하 호호 수다가 만발한 외국 엄마들 틈에서,
‘이 곳의 당신들은 절대 모르겠지만
아시아 한 편의 내 나라에선
우리 애들과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이
물 안에 배 안에 갇혀있단 말이오!!‘라고
있는 힘을 다해 외치고만 싶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구조작업의 지체와
믿음이 가지 않는 각종 매체의 기사 홍수 속에서
정신줄을 붙드느라 힘겨웠던 그때 그 시간들.
겨우 쪽잠을 청해 눈을 붙여도
검푸른 물 속으로 내 육신이 무력하게 잠겨가는
생생하고 무수한 꿈들에 시달렸다.
드래곤볼 만화에서처럼,
지구상 모든 인간들이 허공으로 손을 뻗어
기운을 한데 모으는 원기옥을 행사하여
그들을 구할 수만 있으면, 살릴 수만 있으면
얼마든지 나서서 행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러나….
2.
<난파된 교실> - 나희덕 시인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교실에서처럼 선실에서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그말에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 앉아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조립을 기다리는
나사들처럼 부품들처럼
주황색 구명조끼를 서로 입혀주며 기다렸다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공장의 유니폼이라는 것도 모르고
물로 된 감옥에서 입게 될 수의라는 것도 모르고
아이들은 끝까지 어른들의 말을 기다렸다
움직여라 움직여라
누군가 이 말을 해주었더라면
몇 개의 문과 창문만 열어주었더라면
그 교실이 거대한 무덤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수학 여행 중이었다.
파도에 둥둥 떠다니는 이름표와 가방들
산산조각난 교실의 부유물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아름다운 이름이 있었지만
배를 지키려는 자들에게는 한낱 무명의 목숨에 불과했다.
그들이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순간까지도
몇 만원짜리 승객이나 짐짝에 불과했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사랑하는 부모가 있었지만
싸늘한 시신을 안고 오열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햇빛도 닿지 않는 저 깊은 바닥에 잠겨 있으면서도
끝까지 손을 풀지 않았던 아이들
구명조끼의 끈을 잡고 죽음의 공포를 견뎠던 아이들
아이들은 수학 여행 중이었다.
죽음을 배우기 위해 떠난 길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교실에 갇힌 아이들이 있다.
책상 밑에 의자 밑에 끼여 빠져 나오지 못하는 다리와,
유리창을 탕,탕, 두드리는 손들
그 유리창을 깰 도끼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가
3.
<진달래> 이영도 시인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날 스러져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https://youtu.be/t4DNvmKKd9c?si=nSqfXaCZS7W8btvK
2026년, 벌써 12번째의 봄이 다시 찾아왔고,
서럽고 힘들었던 시간들에 대한 기억은
해를 거듭할수록 서서히 옅어져 가지만.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꺾여버린
여린 청춘의 억울한 넋들이
올해에도 봄꽃으로 지천에 피어난다.
저마다 각양각색의 빛깔로
푸르른 하늘을 향해 당당히 피어오른다.
잊힐 수가 없는 크나큰 슬픔들을
마음마다 이슬같은 눈물로 가득 머금고서
그토록 간절히 누리고 싶어 했던
매년 그 찬란한 봄날의 순간순간들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