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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jonler Sep 15. 2018

야옹이 때문에

로이 냥이랑 꽁냥꽁냥

 강제로 아침형 인간이 되고 있다.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다 보니 귀가 시간이 항상 늦다. 늦은 귀가 후에는 좋아하는 영화나 책을 보다 늘 새벽녘에야 잠에 들기에, 아침은 통으로 자는 일이 많다.

그렇다. 나는 전형적인 올빼미다. 잠자는 게 특기라 누가 안 깨우면 하루 종일도 잘 수 있는 내가, 새벽부터 일어나 시간을 초단위로 쪼개 쓰며 20대를 보냈다. 잠을 좀 덜자면 명망 높은 인간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얻은 건 높은 명망 대신, 높은 나이. 덤으로 잠을 못 자 푸석해진 피부였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건 예전 같은 고성장사회에서나 가능했던 옛말이 되어버렸고 비빌 언덕마저 없는 내가, 누군가 규정해 놓은 성공한 삶의 모습이 되는 건 이번 생에는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목표임을 마침내 깨달았다. 나는 이전보다 좀 여유롭게 살며 사회구조를 탓하기로 하고 내 패턴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 생활 패턴에 유리한 근거를 모으기 시작했다.



TED 강연  “Why do you sleep?” 편에서 Russell Foster 가 말했다.

“In my experience, the only difference between morning people and evening people is that those people that get up in the morning early are just horribly smug.
내 경험에 비춰보면,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의 유일한 차이점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우쭐댄다는 것뿐이다.”

흐흐흐 이거다!

방어 멘트로 즉각 장전했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날보고 정색하며 게으르다는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활동량은 비슷하다며 이 말을 면전에 날려줬다.


재작년인가 재재작년엔가는 한 연구팀이 인간과 DNA 구조가 비슷한 초파리를 생물 모델로 하여, 인간을 비롯한 모든 유기 생물체는 생체시계를 지니고 있으며 그 리듬이 다 다르다는 결과를 얻어냈다는 기사를 접했다. 연구자가 야행성이기에 분명히 이 연구를 시작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과 함께 방어무기+1을 획득해 기뻤다. 이후에도 계속 연구를 진척시켰던 모양이다. 그분들이 글쎄, 작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할렐루야! (서캐디언 리듬-이전에 기사로 접했던 내용과는 방향성이 조금 달라졌음) 나름 있어 보이는 근거들로 든든하게 만족하고 있는 내 생활패턴인데, 요즘, 생각지도 못한 복병의 등장에 당황스럽다.





내 얘기냥?


바로 로이. 얼마 전부터 동거하고 있는 나의 사랑스러운 반려묘이다.

녀석이 어느 날부턴가 자고 있는 내 가슴팍을 질겅질겅 밟고 올라와 얼굴에 대고 큰 소리로 야~옹. 야~~ 옹 해댄다. (처음엔 무슨 신호인지 몰랐는데, 밥 내놓으라는 소리였다.)


밥 안주냥?


시계를 보니 새벽 10시.

내가 움직임을 보이면 재빨리 문밖으로 나가는 시늉을 한다. 나가자고?

잠이 덜 깨 귀찮은 마음이 들어 녀석을 등지고 돌아 누우면 어깨를 타다닥 밟고 넘어와

다시 한번 얼굴에다 대고 이번엔, 쌍니은, 쌍이응 장전하고 소리를 지른다.

ㄴㄴㄴ냐ㅇㅇㅇㅇ야!! 옹!!!!!!!!!!!!!


문제는 계속해서 나를 깨우는 시간이 빨라진다는 것이다.

10시도 새벽인데 9시, 8시, 급기야 오늘은 7시........

5시에 누웠는데 7시는 너무한 거 아니냐.

간신히 눈을 떠 녀석을 본다. 내가 눈을 떴다는 걸 확인하면 다시 문밖으로 나가는 시늉을 한다.

하지만 시늉뿐이다. 네 발은 곧 튀어 나갈 기세로 문밖으로 향해 있지만, 한 발짝도 떼지 않고 시선은 내게 두어

내가 몸을 일으키는지 확인한다. 치밀한 녀석.


내 밥은 내가 챙긴다옹!


저도 먹고살겠다고 밥을 당당히 요구하는 그 모습이 귀여워, 결국은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리고 천근 같은 몸을 움직여 부스럭부스럭하면, 자기 밥인 거 다 알면서 더 보챈다. 다리 사이를 부산하게 왔다 갔다 하며 냐야~옹! 냐야~~옹!

녀석 앞에 그릇을 내려놓는 순간, 짐승미 뽐내며 사료 순삭 스킬 시전 한다.

그 모습에 또 슬며시 웃음이 피어난다.



처음 로이를 데려왔을 때, 한 친구가 로이더러 (나를 가리키며) 그랬다.

"얘 좀 인간으로 만들어라, 로이야~"

녀석이 말귀를 알아 들었나 보다. 소오름.


강제로 아침형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도 싫지 않을 정도로 로이덕분에 너무 행복하다. 더불어, 방어 무기 따위 필요 없는 당당한 아침형 인간이 되어 우쭐해 보련다. (는 훼이크고 조만간 침실 문 닫고 잘듯)






덧, 맘 약해서 여전히 로이와 한침대에서 같이 잔다는 후문. 매몰차게 침실 문을 닫고 자기엔 로이가 너무 이쁨. #로이롭다

나, 로이 침대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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