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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jonler Dec 04. 2018

보이스피싱에 낚이지 않을 수 있었던 아빠의 이유

일상다반사


  어제 점심때쯤 계속해서 전화가 울렸다. 엄마다. 부모님 전화는 일부러 받지 않고 조용한 시간에 다시 거는 편인데 이렇게 계속 전화하는 건 급한 일이라는 뜻이다.

“아빠한테 돈 보내달라고 카톡 안 했지?”
“어? 내가 왜 돈을 보내라고 해?”
“니 이름으로 아빠 휴대폰에 돈을 보내달라는 카톡이 왔는데 아무래도 보이스 피싱인 것 같아. 아빠는 ‘큰 딸’로 니 번호를 저장해 놨는데 실명으로 연락이 왔고, 상무님 핑계를 대는 게 보이스피싱이다 싶더라고” (나는 회사원이 아니다.)

  전화를 끊고 일단 급히 카톡 메시지에 내 이름 도용해서 돈 빌려달라는 톡에 응하지 말라고 안내를 해뒀다. (제 번호 갖고 계신 분들 혹시 연락 오면 절대 응하지 마시길!!) 그 사이 엄마가 아빠 휴대폰의 메시지를 사진 찍어 보냈다. (엄마는 스마트폰 캡처 기능을 아직도 못쓰신다.)


  어떻게 아빠한테 내 이름으로?! 문득 며칠 전, 아이디 도용이 의심된다는 네이버 안내가 머리를 스친다. 아마 그때 네이버 주소록에서 번호를 획득한 모양이다. 내가 ‘아부지’로 저장을 해놓아서 신분 확인이 쉬웠을 것이다. 그놈들, 엄마한테도 톡을 보냈는데 엄마는 원래 휴대폰 확인을 잘 안 한다. 엄마에게 반응이 없자 아빠에게 보낸 것 같다.

  나는 돈이 급하게 필요한 일이 없을뿐더러 없으면 없는대로, 안 쓰면 안 썼지 누군가에게 빌리지는 않는다. 특히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효녀라서가 아니라 부모님의 잔소리 폭탄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다. 힘들어도 부모님 앞에선 늘 괜찮은 척을 하는 편인데 그런 내가 더더욱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대화 내용을 찬찬히 읽어 보는데 봐도 봐도 어이가 없다. 내가 띄어쓰기는 좀 헷갈리지만 저렇게 못 배운 티 나는 맞춤법을 구사하지는 않는다..(정말?)

 “수준 하고는.” 비웃고 있는 와중에 아빠의 뜻밖의 팩트 폭행 대답을 발견하고 현웃 터졌다.


캡쳐 기능 모르시는 엄마, 아빠 핸드폰 직접 찍어 보냄 ㅋㅋ


“아빠 거진데!~”
이건, 진짜다.

  대화 내용을 다시 보니 울 아빠... 내가 아니라는 것도 한참 걸려 알아봤다. 그렇다면 낚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보낼 돈이 진짜 없었다는 것. ㅋㅋㅋ

딸한테 주기 싫어서가 아니다. 이건 진짜 진짜다. 엄마가 용돈을 많이 안 주시는 모양이다..

  한참을 웃다가 아빠가 안쓰러워진 나는, 엄마 몰래 아빠 통장에 백만 원을 보내드렸다. 보이스피싱에 낚이려야 낚일 수 없었던 아빠의 진짜 이유 때문에, 뜻밖의 연말 보너스를 획득하신 아빠.  입금 문자를 확인 하시자 마자 연락이 왔다. 안 그래도 되는데 왜 그랬냐며... 엄청 좋아하신다 :D 물론 술 좀 사드시고 엄마에게 곧 회수당하실 게 훤하지만. 


  보이스피싱 덕분에 뜻밖의 효녀 된 이야기 끝.



P.S
자나 깨나 보이스피싱 조심!










아부지 팔아서 다음 메인에 등극하고, 12만 조회수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아부지 지못미..

아부지 돈 없는거 이제 12만명이 알았다고, 미안하다고, 조심스럽게 글 보여드렸더니 즐거워 하시네요. 다행.

다음 글도 지인들에게 빨대 꽂아 쪽쪽 빨아서 재밌게 써보겠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심하시고 읽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조회수가 계속 올라가 어느 덧, 20만 분께서 읽어 주셨네요..

웃을 일 없는 팍팍한 삶에 소소한 웃음 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




20만 뷰 돌파 기념 아부지와 대화를 공개합니다 :)

유일하게 쓸 수 있는 특수문자인 물결이랑 느낌표 아무데나 쓰심. 좋아하는 거야?



즐거우셨다면 구독 ㄱ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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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부유하는 삶이, 언젠가는 대지에 뿌리내리기를 희망하는 호모사피엔스: 영화와 책, 그리고 고양이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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