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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jonler Jan 13. 2019

상식이라는 허울

1-2

 남편의 회사에서 그의 유해를 한국까지 이송해 오는 일부터 장례 일체의 모든 절차를 능숙하게 처리해 주었다. 그에 비해 난 모든 게 서툴렀다. 모든 게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속도로 진행되었다.


 그의 영정사진이 놓여있는 영안실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의 죽음이 확실해질 것만 같았다. 친정 아버지는 나보다 시댁을 먼저 걱정하셨다. 영안실에 들어가지 않고 울고만 있는 나를 다그쳤다. 얼른 들어가서 시어머니를 위로해 드리라며 나를 영안실까지 질질 끌고 가셨다. ‘너는 시댁의 처분만 바라면 된다.’는 엄마의 말에 내가 놓인 처지를 자각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조문객들과 몇 마디 나누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그리고, 유일한 내 편이었던 존재가 이제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을 미처 받아들이기도 전에 더 비현실적인 상황들이 내게 닥쳤다. 잊지 않기 위한 본능이었는지, 내게 벌어진 일들에 대해 휴대폰에 메모를 남겼다.


2011/10/27
삼우제가 끝나고 시어머니의 여동생 YJ이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회사에서 제시한 보상금 액수가 만족스러운 정도냐고 물으셨다. 심장에서 뭔가 툭 떨어졌다. 그 어느 것도 쌤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는 거라고 말했다. 산사람은 살아야 하는 거라며 5년 가까이 사귀고 결혼했다지만, 18년 키운 부모와 9개월 함께 산 너의 슬픔은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안 믿는 집안 같으면 아들 잡아먹었다는 소리가 벌써 나왔다고,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고도 하셨다.

 회사에서 들어둔 보험이 어떤 위로가 될 수는 없었다. 그의 목숨 값을 받는 것 같아, 나 자신이 더럽게 느껴졌다. 시부모님께 다 드릴 참이었다. 시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릴 거라고 말했더니 너희 시부모님은 원하시는 거 말 안 하시는 분들이라고 어조를 높이셨다. 그럼 친척 분들이 원하는 대로 해드릴 테니까 걱정 마시라고 했더니 그제야 말이 통한다며 다행이라고 하셨다.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고 물으셨다. 미래를 이야기하기에는 시기상조인 거 같다고 말씀드렸다. 미국에 가서 시부모님이랑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자기 같으면 며느리가 와서 함께 살면서 위로해주면 너무 고마울 것 같다고. 그렇게 살다가 미국 부모님이 좋은 사람 연결해주고 더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거라면서. 남편 잃은 지 며칠밖에 안 된 조카며느리에게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 생각을 해 본 적이 있기에 구체화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당신은 언니 편이라고 하셨다. 그런 거였어? 우리 가족이 당한 슬픔 아니었어? 시댁 식구들은 편을 나누고 내가 남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나만 바보같이 너무 순진했구나..


 다음 날 새벽은 시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이대로 돌아가면 우리 집 식구랑 다시는 상종을 못할 것 같다시며 당신께서 묵고 있는 호텔로 우리 부모님과 함께 11시까지 와 달라고 하셨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호텔로 불려 간 부모님과 나는 죄인처럼 시아버지와 큰 이모님, 외삼촌이 계신 앞에서 시어머니가 쏟아내시는 폭언을 들어야만 했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꺽꺽대며 우셨다. 엄마도 처음 보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 날 이후, 우리 부모님도 마음을 고쳐 드셨다.


2011/10/28
 오늘 거기서 다 봤지? 가장 큰 슬픔을 당한 것은 자신인데, 우리 가족에게서 위로다운 위로를 받아보지 못했다며 우리를 인간 말종으로 몰아가신 당신 어머니. 당신을 잃고 슬퍼하던 그 순간에도 당신 부모님을 최우선으로 위로했고, 딸의 슬픔도 뒤로 한 채, 시댁의 처분만 바라면 된다고 말씀하신 우리 부모님인데. 어떻게 생각해야 될까.
 
어머님 친구 분들이 그랬대. 우리 가족이 보상금 바라고 상갓집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고. 내가 쇼 잘한다고. 쌤 알잖아. 행여 우리 쪽 지인들이 장례식장에 와서 나만 챙기면 어머니가 언짢으실까 봐 우리 친척들은 장례식장에 오지 말라고 한 거. 당연히 밤새도록 온 가족이 함께 당신 곁에 있을 줄 알았는데, 당신 부모님은 편하게 주무셔야겠다고 회사에서 마련해준 호텔로 가버리셨잖아. 나만 남겨두고. 나 너무 외로웠는데.
 
 처음에 당신 소식 전하러 당신 할머니께 갔을 때 해주신 말씀이 기억난다. 자기는 나이 먹고 남편과 사별했는데도 쓰레기 하나도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는 밤 시간에 죄인처럼 버리고 가셨다고. 앞으로 주변에서 별 말들 다 할 건데 신경 쓰지 말라고... 그 말이 이제 무슨 말인지 조금 알 것 같아. 힘들다... 쌤 어디 있어...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남편의 회사에서는 보험금에 관한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이 과정을 맡아서 해 주시던 K이사님께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다. 회사에서 가입해 놓은 외국 보험은 모두 배우자에게 상속된다고 했다. 며칠 동안 사망신고를 비롯한 복잡한 절차에 함께 동행해주시며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YJ이모님이 회사 측에 보험금에 관한 문의를 하셨었고, 보험금이 전부 배우자에게 상속된다는 것을 시댁은 이미 알고 계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보험금이 며느리에게 다 가게 되는 일이 없도록 요구하셨다는 시어머니의 말도 전해 주셨다.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그래서 이모님이 내게 전화하셨던 거구나. 급하셨구나. 모든 게 돈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돈밖에 안보이셨던 걸까.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본다고 하더니, 그래서 어머니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셨던 걸까.

  상황에 나는 치졸하게도 우리가 결혼할  시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남자 쪽에서 집을 해오고 여자 쪽에서 혼수나 예단을 해오는 한국 결혼문화는 허례허식이라며, 자기는 미국식이니 피차 그런 불필요한  하지 말자고 하셨다. 이미 아들을 18  독립시켰기 때문에  자식 아니라고 생각한  오래되었다고 하시며, 나더러 이제  남편이니 반품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나도 한국의 결혼제도는 허례허식이라고 이전부터 생각했기에 시어머니의 말이 반가웠다. 그래도  가진 죄인인 엄마의 생각은 달랐다. 시댁에 책잡힐 행동 하면  된다며 없는 돈에 친척들 이불 채와 시부모님 명품 양복과 한복  혼수를 챙겼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우리 힘으로 월세 집을 얻어 신혼시작했다. 자식이 한국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나와 어떤 경제 상태로 결혼했는지 관심이나 있으셨을까.

 그랬던 미국식 어머니께서, 며느리가 한국인이니 상속 문제는 미국 법 말고 한국 법으로 해서 며느리에게 보험금이 더 많이 가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셨단다. 시어머니의 이중적인 태도에 뼛속부터 분노가 일었다. 그가 없는 시부모가 더 이상 가족이 될 수 없는 이유였다.  

 남편은 아버지에 대해서는 언제나 좋은 말을 했지만, 어머니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사실 그때마다 장난처럼 웃어 넘겼었다. 어느 자식이나 부모에 대한 불만 하나쯤은 가지고 있으니 그의 말을 가벼운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렇게 눈앞에서 시어머니의 모습을 목도하고 나니 그가 말했던 괴로움이 이해되었다. 그리고 남편을 위해 시어머니가  달라는 대로 해드렸으면 좋겠다고 K이사님께 말씀드렸다. 시어머니가 아니라 전적으로 남편을 위한 결정이었다. (잠자코 계셨으면 처음 생각대로 회사에서 나온 보험금을 전부  드렸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대로 미국으로 가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면...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일이 마무리된 후 긴장이 풀리자 슬픔, 죄책감, 분노가 한꺼번에 나를 압도했다. 회사 측에서 우리 가족 모두에게 정신과 상담을 권했지만 사양했다. 그냥 혼자 있고 싶었다. 내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내 안의 물음표가 너무 많았다. 가족들도 옆에 있는 게 싫었다.

 혼자 있던 시간들은 오래된 필름처럼 희미하게 남아있다. 다만 미친다는 것이 어떤 건지, 혼이 나간다는 것이 어떤 건지, 지옥이 있다면 그 순간들일 것 같다는 느낌만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21세기에도 꼬리를 길게 늘어뜨린 조선시대 같은 현실. ‘서베리아’라고 불리는 서울의 요즘 추위보다, 그때가 더 추웠던 것 같다. 한동안 많이 아팠다.



이미지 출처: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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