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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jonler Jan 13. 2019

나의 언어

1-6


 개인의 경험을 사회적 통념에 의한 부조리함이라고 확대해석하는 것은 아닐까 문득 궁금해졌다. 사별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통계청 사이트에 접속했다. 인구동향조사 카테고리에서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성/연령/혼인상태별 사망자수를 열람했는데, 2017년 유배우 상태의 사망자수가 3,414,853명이었다. 그중 남자 사망자가 2,652,617명. 이는 한 해에만 260만 명 이상이 ‘미망인’의 프레임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다. 적지 않은 숫자다. 나와 같은 30대 여성 인구는 95,098명. 이들은 잘 살고 있을까.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사별한 사람들만 오세요.’라는 카페 대문의 문구가 눈에 띈다. 가입은 사망진단서를 내야만 허가가 된다. 왜 이렇게 폐쇄적일까.

 가입 대신, 검색을 통해서 내용을 조회할 수 있는 몇 개의 글을 보았다. 까다로운 가입절차가 이해되었다. 배우자 사별의 고통을 모르는 사람들의 언어가 당사자들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긴 것이었다. 그중에 나처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남편과 사별한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는 한 여성의 글이 눈에 띄었다. 어느 연예인의 장례식 소식을 전하는 TV 뉴스를 동료와 함께 보다가 와이프의 모습이 비친 것을 보고 당사자는 감정이입이 되어 “부인이 너무 힘들겠다.”했더니 동료가 “당연히 힘들어야지. 안 힘들고 잘살면 그게 사람이냐”라고 했단다. 사별한 사람은, 잘 살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글이었다. 공감이 되었다. 그렇게 그곳에서는 사회적 인식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비슷한 고통을 아는 사람들끼리만 소통하고 있었다. 혼자 남겨진 고통도 버거운데 나도 모르게 벌어져 버린 일 때문에 왜 사별자가 소수자적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죄지은 것도 아니고 말할 수 없는 삶은 더더욱 아닌데.


 그동안의 나는 시댁의 언어폭력들과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정신적 가학이 당연히 감내해야만 하는 일들로 생각하고 살았다. 모든 것을 혼자서 감당해 보려고 했기에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그 자체로 프레임이 되어 누군가의 행동을 평가하고 제한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데 오래 걸렸다. 그 모든 일은 내가 당하고 있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결국 고립된 삶은 자초한 것이기도 했다.

 내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감정들을 다른 사람은 당연히 여기지 않을 수 있다. 내 마음도 스스로 잘 모를 때가 많은데 하물며 타인이 내 마음을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내 생각과 감정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별자가 모인 인터넷 카페도 외부에 오픈되었으면 한다. 많은 사람이 사별의 고통을 심각한 것으로 당연하게 여기기까지 진통은 필연적일 것이다. 그러나 말해야 한다. 설명하지 않으면 모른다. 내가 어떤 터널을 빠져나와 이곳, 이 순간에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인지.




 남편을 잃고 나서 사람과의 만남을 기피했던 내가 요즘은 독서모임 등에 나가서 내 생각을 조금씩 입 밖으로 꺼내보고 있다. 내 상황을 아는 지인들에게는 ‘괜찮아지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내 삶을 말하기 시작하자 친구들은 그동안 잘 몰랐다며 내 생각을 이해해 주기 시작했고 공감해 주었고 응원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내 편이 생겼다. 여러 해 동안 알고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뜻밖의 고백도 들었다. “사실 나도 지금 우리 아버지, 친아빠 아니야. 우리 엄마도 사별하시고 지금 아버지와 사시는데 저쪽 지인들에게 엄마가 사별했다는 사실을 얘기하지는 않았어.” 다들 그렇게 말하지 않고 살아왔구나.


 언젠가, 사회적 약자를 향한 부당함에 대한 강연을 본 적이 있다. 우리 사회는 힘이 없고 구매력이 없고 언어가 없는 존재들을 사회에서 배제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이 맞다. 힘도 없고 돈도 없지만 언어마저 없을 수는 없다. 더 이상 숨지 말자. 지금처럼 내 언어로 내 삶을 내어 보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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