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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jonler Jan 13. 2019

나는 미망인이 아니다

1-5


 독일남 덕분에 내 삶이 설명이 필요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자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의문은 더 커졌다.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지 않으면 배우자를 상실한 슬픔은 인정받을 수 없는 건가? 왜 남편을 잃은 슬픔은 자식을 잃은 슬픔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지? 왜 사별한 남성을 지칭하는 단어는 없지? 검색창에 미망인이라는 단어를 쳐보고 한동안 멍해졌다.



미망인
남편과 함께 죽어야 할 것을 아직 죽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과부가 스스로를 겸손하며 일컫는 말.

  그동안 내가 겪은 일들보다 이 언어가 가진 폭력성의 힘이 더 컸다. 자칭으로 겸손하게 ‘아직 따라 죽지 못해 살아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타자를 향해 미망인이라고 한다면 ‘너 왜 아직 안 따라 죽었어?’라고 생사를 확인하는 인사가 되는 건가.


 영화를 최근 4년 동안 천 편정도 본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죽음은 매 번 등장하지만 죽음이 남긴 아픔을 딛고 삶을 회복하는 내용의 영화에서는 주로 자식이나 아내가 죽음의 주체가 된다. 살아남은 부모나 남편의 삶은 남은 자의 슬픔으로 조망된다. 그에 반해 <더 포스트>나 <밀양>, <헬로우 돌리> 등 사별한 아내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에서는 그 슬픔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사별한 여성이라는 설정으로만 캐릭터를 소비할 뿐이었다. 왜 그럴까. 얼마 전에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을 다시 보다가 이것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아내와 사별하고 1년 반이 지났지만 아직도 밤에 잠을 잘 못 이룰 정도로 힘들어한다는 톰 행크스의 사연이 라디오에 소개된다. 우연히 이를 듣게 된 맥 라이언이 자신이 일하는 신문사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시애틀의 잠 못 드는 남자’에 대한 사연을 기사화하기로 한다. 그러다 문득 짧은 질문을 던진다.


 왜 남자는, 아내가 죽으면 미망인(widow)이라고 안 하지?


 동료들의 온도가 순식간에 차가워진다. 맥 라이언은 재빨리 그냥 한번 해본 소리라며 다음 대화 주제로 넘어간다. 이 영화는 사별남의 새 아내 찾기가 큰 흐름이고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은 운명적 사랑이라는 설정이다. 당연히 이 대사는 영화의 내용과 전혀 상관없다. 그러나 나에겐 영어권에도 남편과 사별한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인 ‘미망인(widow)’이라는 표현이 존재한다는 게 놀라움 그 자체였다. 사별한 여성에 대한 프레임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남성이 중심이었던 사회에서 사별한 여성의 인권문제는 논의 대상조차 될 수 없었다. 그저 타인의 일일뿐 문제로 느낄 일이 아닌 것이다. 문제라는 자각이 없는데 이것에 대한 공론화는 어불성설이다.




 교육 수준이 높아진 21세기의 지식인은 조선시대의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를 잘 안다. 그래서 사별한 여성에게 아들 잡아먹었다는 말을 직접 대놓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높아진 지적 수준으로 이제, 아들 잡아먹었다는 소리 안 나오는 걸 고맙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고상한 방법으로 변모했을 뿐 이 두 언어는 본질이 같다.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방식이 조금 더 세련되어졌다고 해서 그 행위 자체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사별한 남성을 지칭하는 단어가 존재하지도 않은 이 사회는 아직도, 따라 죽지 못해 살아있다는 자칭의 ‘미망인’이라는 말을 의식 없이 타칭으로 사용한다.  


 슬퍼할 권리조차 박탈당한 사별한 여성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이 일이 말해도 되는 것일까 여전히 혼란스럽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하다. 미망인이라는 말은 타자에게 사용해야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나는 숨어살아야 하는 죄인도, 따라 죽어야 하는 사람도 아니라는 것.



이미지 출처 :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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