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초 집단 작가실에서 생존하기

18년 차 방송작가가 고백하는 ‘작가실 막내의 생존 전략’

by 애미라이터

7층 작가실의 아침은 서늘한 공기와 함께 시작된다.

이곳에는 20대부터 40대까지, 각기 다른 연차의 작가 8명이 모여 산다.

우리의 자리는 연차순으로 정해졌다. 가장 연차가 높은 선배가 창가 깊숙한 곳에 앉고, 막내인 나는 출입문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 배치가 곧 권력의 지도였다.

당시 일했던 작가실 풍경 (*출처:내가 찍은 사진)


경력도, 성향도 각기 다른 여덟 명의 여자가 모인 밀폐된 공간.

그곳의 분위기는 늘 얇은 유리판 위를 걷듯 미묘했다.


누군가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 공기의 흐름이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거나 뜨겁게 달궈지기도 했다.

강한 자존감과 높은 콧대로 무장한 "작가" 선배들 사이에서

나는 영악한 ‘여우’가 되는 대신 미련해 보이는 ‘곰’의 포지션을 선택했다.


‘곰의 탈을 쓴 영악한 생존’

금 되돌아보면 사회경험도 전무하고 대학도 아직 졸업하지 않은

스물두 살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그런 생존법이 나왔나 싶다.

사실 그때 당시에 거창한 전략이 있었던 건 아니다.

본능에 가까운 감각이었다.


정수기 물통이 비어 있으면 군말 없이 물통을 갈아 끼웠고,

수십 장의 대본을 뱉어내다 지친 프린터가 켁켁거리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기계를 고치고
A4용지를 채워 넣었다.

선배들의 농담에는 약간의 주책을 섞은 리액션으로 받아쳤고,

가끔은 일에 지친 선배들을 위해 편성국 제작 피디나 부장들의 성대모사를 하며
작가실 분위기를 한 박자 느슨하게 만들었다.


그건 비굴함이 아니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작가실이라는 생태계에서,

내가 가장 안전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자존심을 세우기보다 선배들을 붙잡고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그리고 배운 것은 그날 바로 원고에 녹여냈다.


가끔 작가의 업무인지 '잡가'의 업무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일이 떨어질 때면,

나는 고민 없이 "제가 하겠습니다" 모드로 나섰다.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것이 이 정글 같은 공간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도 확실한 생존 자세였기 때문이다.

여초 집단에서 살아남는 법은 스스로 강해지거나 눈에 띄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쓸모 있고, 예의 있으며, 위협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하루를 버텨내는 것.


나는 그렇게 2년을 버텼다.

나를 증명하려 기를 쓰는 대신, 나는 그저 성실하게 내 자리를 지키는 쪽을 택했다.


그러자 신기한 변화가 일어났다.

평소엔 까칠하기만 하던 선배들이

내가 PD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날이면 약속이라도 한 듯 앞을 막아서며 방패가 되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부탁한 적도, 살갑게 아부를 떤 적도 없었다.

하지만 선배들은 “이 아이템, 네가 하면 잘 살릴 것 같아”라며 무심하게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것은 신문이나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는

선배들이 현장에서 발로 뛰어 얻어낸 '황금' 같은 귀한 아이템들이었다.


내가 출입문 가장 가까운 자리에 묵묵히 있었을 뿐인데

그 무해한 성실함이 누군가에게는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또 누군가에게는 기꺼이 내 것을 나눠주고 싶은 신뢰를 불러일으킨 모양이다.


내가 한 일이라곤 출입문 바로 옆 내 자리를 성실히 지킨 것뿐인데

그 무구한 태도가 선배들의 마음속에 방패를 하나씩 심어주었다.


적을 만들지 않는, 거슬리지 않는 무해함.


그것은 때로 그 어떤 날카로운 재능보다,

이 세계에서 오래 살아남게 만드는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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