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방중 빨리감기 화면이 나갔다

웃프고도 간담이 서늘했던 그날의 3초

by 애미라이터

방송 5초 전.


“방송 5초 전, 4초 전, 3, 2, 1… 스따뜨.”


스튜디오에 ON AIR 불이 켜지는 순간, 생방송이 시작된다.


사전 녹화랑 달리 생방송에는 ‘수정’이 없다.

한 번 나가면 끝.


녹화처럼 마이크로단위로 시사를 하고, 수정을 하고 디테일하게 볼 여유 같은 건 사치다.

큐 사인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클로징 멘트가 끝나고 후CM이 나갈 때까지,

제작진 심박수는 최고치를 찍는다.


카메라 감독, 주조실 PD, AD, 작가, 아나운서까지.

각자 자리에서 초 긴장 상태로 사고없이 끝나는 순간 비로소 참았던 숨을 내쉰다.

"아 끝났다...!"

시청률은 그다음 문제다. 일단 무사히 털어냈다는 해방감.

그게 생방송의 맛이다.


그런데 18년이 지난 지금도 떠올리면 손바닥에 땀이 차는 순간이 있다.

팽팽하던 스튜디오 공기를 한 방에 깨버린, 생방송 중 벌어진 방송사고 때문이다.


#1. “인진쑥? 안진쑥?”- 생방 중 실시간으로 자막을 고치다


내가 맡았던 프로그램은 전국 각지의 소식을 전하는〈생방송 전국시대〉였다.

전국 팔도의 특산물, 제철 식재료를 다루다 보니 처음 듣는 식재료들이 수두룩했다.


그날 아이템은 전라남도 광주에서 올라온 ‘인진쑥’.

지역 리포터가 푸릇푸릇한 쑥밭을 누비며 직접 쑥을 캐는 장면이 생방송으로 나가던 그 순간,

정적을 깨는 주조정실에서 기술 부장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야! 저거 뭐야? 자막 왜 저래?”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상·하단 자막에 나가야 할 ‘인진쑥’이 모두 ‘안진쑥’으로 찍혀 있었고,

화면 속 리포터는 계속해서 멘트를 치고 있었다.


“인진쑥, 정말 싱싱하죠?”

보통 생방 자막은 작가가 의뢰하고 디자이너가 작업한다.

그리고 그날,

모든 자막이 ‘인진쑥’이 아니라 ‘안진쑥’으로 나간 건 전부 내 실수였다.

얼어붙은채로 화면만 응시하고 있던 나를 보고

실시간 자막을 치던 디자이너 언니가 순간적으로 결단을 내렸다.

생방 중.

이미 나가고 있는 자막을 실시간으로 전부 수정했다.

‘안진쑥’ → ‘인진쑥’.

방송은 그렇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끝났다.

평소 언니랑 직장 동료 이상으로 친하게 지낸 덕이 컸다.

담당 PD는 방송 끝나고 웃으면서 말했다.

“다음부터는 자막 실수 안 봐줘~”

가볍게 넘어갔지만, 방송이 끝난 후에도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손이 덜덜 떨린 채로.

18년이 지난 지금도 그 언니와는 연락하며 지내는데

가끔 그날 얘기를 꺼내면 언니는 꼭 이렇게 말한다.

“실시간으로 자막 수정된 건, 아마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야.

근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지.”

그러면서 덧붙인다.

“기억나? 훨씬 아찔했던 방송사고 났던 그날.”


#2. 역대급 방송사고-생방송 중 ‘빨리감기·되감기’가 그대로 나간 날


생방송 중 빨리감기와 되감기가 그대로 나갔다.

그것도 광고 영상이.


사고라고 부르기엔 너무 적나라했고, 실수라고 하기엔 화면이 너무 정직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2층 주조정실에서는 생방송이 흘러가고 있었다.

메인 피디는 큐시트를 확인하며 방송 종료를 카운트했다.


“자, 방송 종료 5초 전.

4,

3,

2,

1. 후CM 스타뜨!”


프로그램이 끝나면 광고가 나간다.
시작 전 광고는 전CM, 종료 후 광고는 후CM.


스튜디오 화면이 아닌 광고와 VCR은 모두 AD, 조연출이 실시간으로 테이프를 갈아 끼우며 직접 재생한다.


그런데. 후CM이 나가야 할 그 순간,

조연출의 손이 재생 버튼이 아닌 ‘빨리감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 화면이 그대로 TV에 나갔다.

“야! 뭐야??”


피디의 고함에 놀란 조연출은 패닉 상태로 손을 더듬었다.

다시 처음부터 틀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번엔 재생 버튼 대신 이번에는 '되감기' 버튼을 누르고 만 것이다.


그렇게 채 3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TV에는 광고 영상이


빨리감기(▶▶)

되감기(◀◀)

재생(▶)


순서대로 고스란히 송출됐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광고는 닌텐도였다.


생방송에서 되감기와 빨리감기 화면이 나갔다는 건 "사고"가 아니라 "재난"에 가까웠다.

방송국 주조정실 (*출처: 뉴시스)


주조정실에 있던 모든 스태프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심장이 귀까지 뛰어올랐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정적을 가른 건 오로지 광고 음향뿐이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기술감독들은 아무 말 없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하나둘 자리를 떠났고,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던 조연출에게 메인 피디가 툭, 말을 던졌다.


“괜찮아.이미 나간 걸 어떻게 하겠니.”


그리고 잠시 웃으며 덧붙였다.

“야, 닌텐도 광고주는 좋겠다.
영상 두 번 나가서.”

조연출의 어깨를 툭툭 치던 그 피디의 어깨는 주조정실을 나설 때 유난히 축 처져 있었다.


그리고 그날, 조연출이 아닌 피디님은 시말서를 썼다.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피디님은 내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연출자다.


방송이 왜 힘들어도 재미있는지, 이 일이 왜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일인지 처음으로 알려준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생방송에서 진짜 사고는


화면에 나간 실수가 아니라,

그 실수 앞에서 누가 먼저 책임을 가져가느냐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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