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니던 방송국 때려치우고 인도로 떠난 이야기_첫 번째
2007년부터 2009년까지.
2년 동안 잘 다니던 방송국을 때려치우고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인도로 떠났다.
촬영장을 따라다니고, 대본을 쓰고,
생방송을 하며 숨 돌릴 틈 없이 달리던 2년.
그 시간 내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던
문장이 하나 있었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
거기에 내가 존경해 마지않던
한 PD님의 말이 더해졌다.
청춘의 불꽃이 꺼지기 전에
더 나이 먹기 전에
한 번쯤은 진짜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보라는 조언.
내 로망의 나라.
내가 꿈꾸던 나라.
영감의 나라.
자아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던 나라.
각종 미디어와 책으로만 보던 "신비의 나라"
나는 그렇게 잠시 방송을 일시정지 하고.
인도를 택했다.
나의 첫 일터였던 7층 작가실 선배들은
나를 위해 애정 가득한 편지까지 써주며
따뜻하게 배웅해 주셨다.
나의 첫 해외여행지였던 인도.
그리고 무모하게도,
여자 혼자 떠난 곳이기도 했다.
아빠는 상식을 뛰어넘는 치안과
최악의 위생 상태를 이유로
“말도 안 된다”며 극렬히 반대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30일간의 촘촘한 여행 계획표를 짰고
PPT까지 만들어 일주일 동안 아빠를 설득했다.
퇴근한 아빠가 현관에서 신발을 벗기도 전에
ppt 보고서를 들이밀며
'발표'를 시작했고
결국,
승낙.
그리고 아빠는 나에게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당시.
50만 원이 넘는 캐논 DSLR 카메라를 사주셨다.
엄마 역시 나를 전폭 지지했다.
“여행 가서 살고 죽는 것도 다 운이야. 갔다 와.
가서 인도 왕자 데리고 오고.”
라고 하면서.
그렇게 나는 월급 60만 원을 쪼개고 쪼개
2년 동안 모은 돈으로
인도행 티켓을 끊었고
내가 그렇게 인도에 정신이 팔려있을 무렵.
뉴스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연일 속보로 보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침출근을 뒤로 미루시고
새벽 3시에 인천공항까지 나를 태워다 주신
아버지의 배웅을 받으며
80리터짜리 배낭과 침낭을 둘러멘 체
일본 나리타 공항을 경유한 후
12시간 비행 끝에 델리 공항에 도착했다.
훅! 하고 나를 감싸는 더운 공기와 무거운 습도
시끄럽고 정신없이 울려대던 클락션
질서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자동차와 사람 동물들이 뒤섞인 도로를 마주한 순간.
'아... 다시 돌아갈까'
하는 후회가 아주 잠깐 스쳤다.
하지만 그럴 틈도 없이
인도는 특유의 온도와 소음, 혼돈으로 나를 압도했고
나는 준비도 못 한 채 순식간에
그 세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나의 인도는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