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마음 열기

-잘 다니던 방송국 때려 치고 인도로 떠난 이야기_두 번째

by 애미라이터

인도에 오니 가장 무서웠던 건

전염병도

성폭행도 테러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인도인의 눈이었다.

- 하정아 ‘그래! 인디아 중-



거리에서,

기차역에서,

기차 안에서,

차 안에서,

식당에서


나는 인도인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썼다.

괜히 바닥을 보고,

창밖을 바라보았고,

모르는 척 했고,

말을 걸어오면 계속해서 못 알아듣는 척 했다.


인도에 도착하고 나서,

며칠, 아니 몇 주 동안은

그들의 눈을 바라볼 수 없었다.

아니,

바라보기 싫었다.


여름 태양보다 뜨거운 눈빛을 가진 그들.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들의 눈이

싫었고 무서웠다.


인도의 수도 델리에는

여행자의 거리,

쇼핑의 거리인 “빠하르간지”가 있다.


이곳엔 환전소부터 게스트 하우스,

거대한 시장과

별의 별걸 다 파는 로컬가게 여행사,

한인 식당과 로컬 음식점,

인터넷 카페까지


없는 것 빼곤 다 있기 때문에

배낭여행자들은 모두 이곳으로 몰린다.


나 또한 다음 행선지인 마날리행 버스티켓을 끊기 위해 “빠하르간지”를 찾았다.


가이드 북과 지도를 더듬거리며 한국인에게 소개받은 여행사를 찾고 있는데

호객꾼들, 소위 말해 삐끼들과 거지,

장사꾼들의 무차별적 공격(?)이 시작됐다.


한 발짝 걸으면 달라붙고

그들을 피해 두 발짝 걸으면 또 다른 이들이 달라붙었다.


’네가 찾고 있는 여행사를 알고 있다.‘


’내가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가 정말 좋다.

함께 가자.‘


’이 길은 내가 제일 잘 안다. 나만 따라와라.‘


’헬로 마담. 기브 미어 텐 루피‘


‘언니 언니 한국 언니!!

(한국말을 기가막히게 잘했다)’


찌는 더위와 숨쉬기 힘들 만큼 더러운 공기,

오래된 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


발마다 차이는 쓰레기와 거리를 뒤덮은 소똥,

거대한 소, 자동차, 자전거 릭샤, 오토릭샤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기도문을 중얼거리며 걸어가는 사람들...


마치 전쟁이 막 끝난 황량한 도시 같은 이곳을

당장 도망치고 싶었고

무섭고 두렵기까지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과분한 친절과 도움이 짜증났다.


“노! 노!

노.노.노.노.

노옵!!!꺼져!”


나는 이해하기도 전에 경계했고,

믿어보기 전에 화를 냈고,

친절을 친절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무조건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무시하며

그렇게 인도를 온 몸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씩씩거리며 골목을 돌고 돌아 여행사 찾기를 포기하던 그 순간,


그토록 찾아헤맨 여행사를 찾았고

여행사의 간판을 본 순간,

나는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그곳은 불과 30분 전, 한 현지인이 알려준 곳이었다.


그 현지인은 나에게 길을 알려주겠다면서 말을 걸었지만

모든 것이 힘들고 짜증 났던 나는

무조건 경계하며 그에게 꺼지라고만 했던 것이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마음을 연다는 것.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믿는다는 것.

나에게는 어렵고 두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인도에 온 첫날.

인도인들을 경계하고,

화를 내고,

믿지 않고,

그들의 친절을 무시한

내 자신에게 실망했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그들과 섞이기 위해 이곳에 왔건만


난 바보처럼 그들이

한 발 짝 다가올 때마다

두 걸음,

아니 저 멀리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날 밤,

마날리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생각했다.


좀 무섭지만, 두렵지만 그들의 눈을 바라보자.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손을 잡자.


사기 좀 당하면 어때?

물건 좀 잃어버리면 어때?


인도에서 만나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지내는

한국인 언니가 생각난다.

여행 내내 많이 의지하고 많이 따랐던 은주언니.


북인도 라다크의 유명한 불교사원인 틱세곰파를 가기 위해

우리는 로컬버스에 올라탔다.


그런데 갑자기 출발을 기다리던 언니가

버스에 내려 구멍가게로 막 달려가더니

과자 한 봉지를 사 왔다.


그러더니 승객들에게 구걸하다

차장에게 쫓겨난 한 아이에게

과자 한 봉지와 동전 몇 개를 손에 쥐어주며

빙그레 웃었다.


“그냥... 오늘 그냥 좋은 일만 생기라구~”


그런 언니의 모습에 우리는 모두 기분이 좋았고.

그날 정말 즐거운 여행을 했다.


현지인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먼저 말을 붙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낯선 사람들에게, 아니 그 누구든 상관없다.


사람에게 마음을 연다는 게,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충분히.


마날리 전나무 숲에서 만난 수도승 할아버지.

만약 할아버지가 청한 악수를 그냥 지나쳤다면

난 수도승 할아버지가 알려준 현지인만 아는 아름다운 사원은 존재도 모른 채

다음 도시로 떠났을 거다.



델리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 안에서 만난 아저씨.

그분과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하지 않았다면

덜컹거리는 소란스러운 기차 안에서 먹는 짭조롬한 인도 과자 한 조각과

따뜻한 짜이 한 잔의 낭만을 영원히 몰랐을 거다.



암리차르, 황금 사원에서 만난 열다섯 살 소녀.

내가 그녀를 귀찮아하고 지나쳤다면

아리랑을 함께 부를 일도

그 가족들과 마음을 나눌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스리나가르 달 호수 위 하우스 보트에서 만난 주인집 큰딸.

그녀에게 매일 아침,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면

인도 시장에서 산, 가장 아끼던 옷이 찢어져

실과 바늘을 빌리러 찢어진 옷을 들고 주인집 아주머니를 찾아갔을 때

슬며시 그 옷을 가져가 한 땀 한 땀 바느질 해주던

그녀의 따뜻한 손길도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달리던 버스를 갑자기 멈춰 세우고
마구잡이로 들이닥친 인도 군인들.

그들을 끝까지 경계하고 두려워했다면

갑자기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내밀던
붉은색 과일 주스와 인도콩 간식을
우리는 끝내 먹지 못했을 것이다.


인도에선,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함께 짜이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문화라고 했다.


여행 중 내가 거절했던 짜이가 몇 잔이었던가.

여행 중 내가 외면한 눈빛이 몇 명이었던가


여행 기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먼저 짜이 한잔을 청할 만큼 그들과 가까워졌지만

지금 생각하니 아쉬움이 남는다.


깊고 진한, 뜨거운 그들의 눈

검고 거친 그들의 손과 발.


두려워하지 말 것.

마음을 연다는 것.

가까워진다는 것.

눈을 바라보고, 손을 잡을 수 있는 용기.


그래, 마음을 연다는 건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마음을 여는 만큼 세상이 보이고.

마음을 여는 만큼 상대방이 보인다.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내가 먼저 다가가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하지만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일.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


‘마음을 열었어. 그리고 상처를 받았어. 그렇지만 상관없어.
사랑하는 방법을 알았거든.‘
인도에서 만난 엄마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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