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마주한... 그때 그 “한 컷" 들

잘 다니던 방송국 때려치고 인도로 떠난 이야기_세번째

by 애미라이터

인도여행 1주차.

북인도 마날리의 한 카페에 앉아

따뜻하고 달콤한 짜이를 마시며

창밖 너머 안나푸르나의 설경을 감상하고 있던 어느 오후.


그곳에서 만난 한국인 동갑내기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니가 며칠 전부터 인도를 제대로 느끼고 즐기고 싶다고 했잖아.

내가 기가막힌 방법을 알려줄게”


나는 귀가 솔깃해서 물었다.


"뭔데?"


“인도에선 두 가지만 포기하면 돼.
첫 번째 위생관념
두 번째 수치심”



“헉... 에이... 그게 뭐야...”


“진짜란다. 친구야~

너보다 먼저 인도를 겪은 날 믿어보렴!”


나는 픽 웃으며 남은 짜이를 들이켰지만

내심 마음속으로

친구가 말한 꿀팁을 계속해서 되새김질 했다.


내려놓을 것
‘위생 관념과 수치심’

간직할 것.
‘내가 체득한 마음 열기’



나는 그 두 가지를 여행 중 계속 되뇌이며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내 평생 다시는 마주칠 수 없을 것 같은 장면을 만났다.

인도사진.bmp 2009년 7월. 겐지스 강에서의 나.


바라나시 겐지스강에 하루 종일 앉아 시체를 태우는 화장터를 바라봤고,


사람 한 명이 겨우 발을 뻗고 누울 수 있는 3층으로 나눠진

SL칸 기차를 타고 20시간 동안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했고,


인도에서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묵고 있던 숙소 옥상에 올라가 달려드는 원숭이들을 장대로 쫓아대며

겐지스 강 위, 태양이 달에 완전히 가려지는 찰나를 보았고


네팔의 한 나이트클럽에선 아무 생각 없이 현지인이 건넨 술을 마신 뒤

어두컴컴한 곳으로 끌려가 나쁜 일을 당할 뻔하기도 했다.


한밤중에도 40도를 웃도는 더위와 습도를 견디지 못해

도미토리 숙소에서 뛰쳐나와

사원 앞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벌러덩 누워

80리터짜리 배낭을 끌어안은 채 행인들이 보든 말든 잠을 청하기도 했다.


1000044243.jpg 자이살메르 사막. 그리고 낙타들과 한컷
KakaoTalk_20260112_114056459_24.jpg 모레 바람으로 눈뜨기 힘든 자이살메르

사막의 도시 자이살메르에서는

하루 종일 낙타를 타고 침낭 하나에 의지한 체 사막 한가운데서 잠들었다.


인도에서 네팔로 가기 위해 국경을 넘을 때는

서슬퍼런 눈빛과 표정으로 우리의 여권과 신분증을 수차례 확인하며

별의 별걸 물어보던 군인들에게 바짝 쫄기도 했다.


불교 4대 성지 중 하나이자 부처가 탄생한 곳으로 알려진 룸비니 사원을 가기 위해

승객으로 꽉 찬 대형 버스의 비상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가

난간과 가방을 붙잡고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한 시간을 달렸다.


인도에서 기차와 버스는 세 시간 연착이 기본이었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져도 사람들은 늘 같은 말을 했다.


“No Problem!
인크레더블 인디아!”


시종일관 문제는 있었지만, 그들은 문제를 문제로 대하지 않았다.


인도 기차의 창문은 유리 없는 쇠창살 뿐이었다.

한 칸에 사람들은 무작위로 낑겨탔고

엉덩이를 걸칠 수만 있으면 그게 곧 자리였다.


기차가 역에 설 때마다

쇠창살 사이로 인도 아이들의 손이 마구 튀어나왔다.

구걸이었다.


길을 걷고 있는데 한 가게에서 갑자기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연일 40도를 웃도는 폭염과 열악한 전기 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과열된 냉장고가 그만 터져버린거다.

하지만 그들은 늘 그랬듯


“No Problem!”


대수롭지 않게 냉장고를 고쳤다.


인도에서 자아를 찾았냐고?

인도에서 깨달음을 얻었냐고?

인도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꼈냐고?


놉(NOPE)!!!


사람에게 치여 정신은 안드로메다


계속되는 폭염과 물속을 걷는 듯한 숨막히는 습도에

체력을 후달달

멘탈은 바사삭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생각뿐이었고

이건 뭐 내가 지금 여행을 하는 건지

고행을 하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돌아가는 한국행 비행기를 찢어버리고

여행을 30일 더 연장했다.


문제투성이였지만

그 누구도 문제라고 말하지 않는 곳에서,


모든 게 엉망인데도

이상하게 살아지는 그 세계에서,


나는 처음으로

‘버텨도 괜찮은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위험했고 무모했으며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순간들 투성이었다.

신났어아주그냥.bmp 인도에서 정줄놓고 신났던 나


하지만 신기했다.

죽을 뻔한 순간이 닥칠때 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경계와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그 “인크레더블”한 날들을 지나

마침내 나는 도착했다.


16년이 지난 지금도 꿈에 나올 만큼 강렬했던,

하이라이트 컷의 그곳,

바로 라다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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