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니던 방송국 때려치고 인도로 떠난 이야기, 마지막 편
하늘과 가장 가까운 도시,
오직 북인도 라다크에 있는
‘판공초 호수’를 보기 위해 떠난 길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해발 5,606m.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동차도로,
‘까르둥 라’ 고개를 넘는 길.
산기슭을 파내 만든 비포장 도로로 악명이 높았고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비좁았으며
바로 옆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낭떠러지였다.
한번 떨어지면
시체를 찾는 것도 불가능해
떨어진 차는 그대로 두고 와야 한다는
그런 도로였다.
라다크로 향하는 26시간 동안
거대한 설경과 5미터가 훌쩍 넘는 눈으로 된 벽,
끝이 보이지 않는 만년설.
우리의 앞길을 막던 수십마리의 양떼와 야크떼들까지.
믿기 힘든 절경들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기억에 남은 건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쳐 버려진 트럭들,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고산병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과 울렁거림,
고도가 높아질수록 조여오던 숨.
퉁퉁 붓기 시작한 손과 발.
나는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한 시간마다 속을 게워내며
엉엉 울면서 그 시간을 버텼다.
가장 높은 고도의 도로를 지날 때는
잠깐 정신을 잃기도 했었다.
그렇게 26시간 동안
죽을 고비를 넘기며 도착한
라다크의 수도 ‘레’는
해발 고도 5,000미터 남짓.
그래서인지
세상에서 가장 빨리 해가 뜨는 도시처럼 느껴졌다.
새벽 다섯 시만 되면 대낮처럼 환해졌고
일출이 시작되면 알아들을 수 없는 아침 기도문이 도시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하늘과 가까운 도시 레를 걷다 보면
구름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구름의 그림자가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어딜가도 걸려있는
기도문과 경전, 불교 경구가 빽빽이 적힌
형형색색의 천 조각 “루타초”가 바람에 휘날렸고,
라다크 인들은 항상 먼저 나에게 “쭐래~” 라며 그들의 언어로 인사를 건넸다.
내가 아침으로 자주 사 먹었던 밀가루 화덕 빵집 아저씨는
나보고 한국에서 왔다고 신기해하면서 늘 덤으로 빵 몇 장을 더 주곤 했다.
고산지대인 라다크의 길은
대부분 평지가 아니라 오르막이었는데
고산병의 여파와
바닥까지 떨어진 저질 체력 탓에
나는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거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그런데도 라다크에서 마주한 풍경들은
내가 지금 정말 지구 위에 서 있는 게 맞는지
의심하게 만들 만큼
경이로웠다.
그래서였을까.
라다크의 어느 길을 걷고 있을 때든
나는 분명 최선을 다해 걷고 있는데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 모든 감각은
고산병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라다크 중에서도 차를 타고 몇 시간을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오지 중의 오지였던 “누브라밸리”는
극 F인 나의 눈물샘을 수시로 자극하게 만든 곳이었다.
누브라밸리는 오지마을 답게 뻑하면 정전이 됐다.
숙소에서 저녁을 먹던 중
팟! 하는 소리와 함께 모든 전기가 나갔다.
정전.
그리고 주변은 순식간에 칠흑같은 어둠에 잠겼다.
모든 불이 꺼지는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별은
하늘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나무 사이에서도,
내 옆에서도 반짝일 수 있다는 걸.
위를 올려다 보아도 별
옆으로 바라 보아도 별
숙소를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포플러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릴때 마다
나뭇가지 사이로 수십개
아니,
수백개의 별들이 빛났다.
바람결 따라 흔들리던 포플러 나무
바람결 따라 반짝이던 별들
마치 사방으로 별이 촘촘히 박힌
거대한 반구 안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수천 개의 별들이 흩뿌려진 밤하늘을 더 잘 보기 위해
묵고 있던 숙소에서
낡은 매트리스를 마당 한가운데로 끌고 나왔다.
그리고 벌러덩 누운 채
밤새도록
떨어지고, 반짝이고, 속닥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무작정 불러댔다.
그때 내가 불렀던 노래가 바로
“이소라 7집 중 트랙 11번" 이었다.
"함께 우주에 뿌려진 우린
수많은 별 그 중에 처음 마음 내려놓을 곳
찾아 헤매었죠.."
그렇게 노래를 다 부를 때쯤
거짓말처럼
별 하나가 길게 꼬리를 그리며 떨어졌다.
별똥별이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고
지금도 그 이름을 모른다.
숨이 막힐 듯 검은 하늘 위
수천 개의 별이 쏟아지던 그 밤.
그리고 부르던 우리의 노래.
아마도
내 평생 다시는 마주치지 못할
가장 선명했던
“단 한 컷”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