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게 좋아서 방송작가를 한다고? 그럴 거면 싸이월드에 글이나 올려
칡 촬영 사건 이후에도
아이템은 계속 엎어졌고
사례자 펑크는 숱하게 반복됐다.
그때마다 수습하고
다시 확인하고
또 의심했다.
촬영 1주 전,
3일 전,
하루 전까지
사례자에게 전화를 걸어
같은 말을 반복했다.
“촬영 일정 변동 없으시죠?”
“정말 괜찮으신 거죠?”
그렇게
확인병 같은 습관이 생겼다.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팀장님이 물었다.
“너는 방송작가 왜 하고 싶어?”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글 쓰는 게 좋아서요.”
그러자 팀장님과 메인언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글 쓰는 게 좋으면
싸이월드나 블로그에 글이나 올려.”
그리고 팀장님이 소주잔을 들이키며 말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한 끗차이야.
아이템 두 개 찾으라고 했을 때
하나 찾으면 아마추어고
세 개 찾으면 프로야.”
“촬영구성안도 마찬가지야.
포인트를 하나 넣느냐, 두 개 넣느냐의 차이야.”
그리고 이어진 말.
“기죽지 말고,
깨지는 거 두려워하지 말고 일해.
그래서,
제발
우릴 뛰어넘는
선배 허를 찌르는
재수 없는 작가가 돼.
그러려면
우릴 계속 괴롭혀야 해.
붙잡고 물어보고, 고민하게 만들어.”
작가는
대충 넘겨짚으면 안 되고
끝까지 확인하고
끝까지 의심해야 한다고
팀장님은 열변을 토했다.
그날 이후
나는 방송 전날이면 무조건 밤을 새웠다.
가편집 영상을 보고
메인언니가 내레이션을 쓸 동안
나는 자막을 뽑았다.
그리고 새벽 5시,
팀장님의 샤우팅이 다시 시작됐다.
“이런 촌빨 날리는 자막은 안 돼!
자막은 다음 장면이 궁금하게,
함축적으로!
그림 설명하는 자막은 최악이야!”
비몽사몽이었지만
고함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막은 그림 설명이 아닌
다음 장면으로 끌고 가는
미끼라는 걸
그때 처음 배웠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변태스럽게도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팀장님을 보며
더욱 버티고 싶어졌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사람은 나를 키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