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연출하는 익숙한 방식에 대해

방송은 왜 장애를 ‘희망’ 아니면 ‘안타까움’으로만 그릴까?

by 애미라이터

방송을 하면서

장애인 프로그램을 총 두 개 했다.


같은 대상을 다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연출’ 됐다.


하나는 M본부에서 제작한 장애인 휴먼다큐였고,

다른 하나는 ARS 전화 기부를 기반으로 한 다큐 프로그램이었다.


휴먼다큐에서는

입양아를 둔 가정과 장애아를 둔 가정의 이야기를 다뤘다.


러닝타임은 약 10분 이내의 VCR.


내가 막내를 지나 서브작가로 정식 입봉 한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메인 작가와 팀장은 분명한 기준을 제시했다.


무조건 희망적으로,
예쁘게.


불쌍해 보이면 안 되고

궁상맞게 보이면 더더욱 안 된다고 했다.


장애아를 키우며 겪은 어려움과 가족의 고통

극복 과정은 필요하지만

전체적인 내레이션과 영상 톤은

밝고 희망적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그래서 에필로그 내레이션은 늘 비슷했다.


희망, 꿈, 무지개


늘 같은 단어들이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열세 살 지체장애 아이를 촬영한 적이 있다.

지체장애 3급이었고

피겨스케이팅을 하고 있었다.


당시 그 아이는

특수학교 입학 허가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방송이 나간 뒤,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고 했다.


방송을 봤고,

입학을 허가해 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부모는 고맙다며 전화를 해왔다.


이 이야기를 들은 메인 작가는

이를 자신의 업적처럼 강연에서 말했다.


나는 그때 조금 씁쓸했다.


그 아이에게 방송이라는 치트키가 없었다면

평범한 권리는

끝내 지켜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첫 번째 장애인 프로그램을 했던 해는 2010년이었다.


방송국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막내를 지나 서브작가로 정식 입봉 한

첫 프로그램이었다.


그로부터 6년이 흘렀다.


방송판에서 버틸 만큼은 버텼고,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는 아니었다.


두 번째 장애인 프로그램은

2016년이었다.


이번에는 휴먼다큐가 아닌

ARS 전화 기부를 기반으로 한

다큐 프로그램이었다.


방송이 나가면 ARS를 통해

실시간으로 기부를 받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연출 방향은 명확했다.


최대한 불쌍하게,
최대한 안타깝게,
최대한 우울하게.


인터뷰 중 “가끔 해외여행을 간다” 거나

“40평이 넘는 집에 산다”는 이야기는 모두 편집됐다.


한 번은 장애아동을 둔 어머니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어머니는 내가 전화를 하자마자

방송 출연료와,

방송이 나갔을 때 보통 기부금이 어느 정도 모이는지를 물었고.


그 금액에 따라

출연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당시 기부금은 출연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구조가 아닌,

초록우산 재단을 거쳐 전달됐다.


어머니는 재단과 통화한 뒤

촬영을 허락했다.


촬영 내내

어머니는 우울하고 슬픈 표정을 유지했다.

나 역시 촬영 분위기를 그쪽으로 이끌어

구성안을 썼다.


우리는

서로의 목적을 위해

가난과 슬픔을 거래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함께 일하던 PD가 누군가를 회사 사무실로 데려왔다.


본인이 촬영했던 장애인 엄마와 딸이었다.


촬영을 하며 친해졌고,

자기 집에서 며칠을 함께 지냈다고 했다.


방송 속 모습과는 달리,


지적장애가 있던 엄마는 씩씩했고

다섯 살 딸은 똑 부러졌다.


사무실 문이 열리자마자

아이는 나에게 달려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사탕과 껌을 쥐여주었다.


나를 스스럼없이 ‘이모’라 부르며 따르는

아이의 얼굴엔

방송이 요구했던 ‘안타까운 그늘’ 따위는 없었다.


엄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이제 곧 집에 가야 하는데

‘장애인 콜택시’를 부르면

기본 2시간은 기다려야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작가님, 이게 현실이야.
복장이 터져 정말!

열악한 복지 현실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그녀는

비련의 주인공이 아니라,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을 일궈가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출연자와 친해져 집으로 초대하고 며칠을 함께 지냈다는 PD의 태도였다.


장애인 프로그램을 하면서

내 시선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해진 건 하나였다.


방송이 요구한 표정과

그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얼굴은


많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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