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말고 네 자신한테 미안해 해.

아이라인 짙게 그리고 서울에서 버틴 나날들

by 애미라이터

그날도

어김없이

메인 언니에게 한 시간 넘게 혼이 났다.


“왜 이렇게 말을 대충 들어?

너 너무 일을 느리게 배워. 빨랑빨랑 배우면 좀 좋니?”

왜 그렇게 더딘 거야.”


아 오늘도 깨지는 날인가?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팀장님이 말을 끊었다.


“너 감도 있고, 센스도 있어. 열정도 있고.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왜 그러는 거야.”



예상하지 못한 그 한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울면서 죄송하다고 하자

팀장님이 툭 던지듯 말했다.

“나 말고,
너 자신한테 미안해해.”


그리고 바로 덧붙였다.


“어우 야, 근데 나 보면서 울진 마라.

너 아이라인 다 번졌어.

훠이~ 저쪽 보고 울어.”


나는 울다가 웃고 말았다.


나는 눈이 작다.

그게 콤플렉스였다.

그래서 아이라인을 늘 진하게 그렸다.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는

더 진하게 그렸다.


괜히 기죽을까 봐.


‘서울에서는

기 안 죽어 보이는 게 제일 중요하다’

혼자 굳게 믿고 있었다.


그날 팀장님은 이런 말도 했다.


“너 고향에서 큰 뜻 품고

다 버리고 서울 올라온 거 아니었어?”

근데 왜 그따위고 그 모양이냐.”


지금 생각하면

꽤 무례한 말들이 섞여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말들을 붙잡고 오래 버텼다.


그리고 그 팀장님을

진심으로 따랐다.


아이라인이 번진 얼굴로,

서울 한복판에서.


그러다 어느 날 오후,

우리 제작사가 잘릴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팀장님은 눈에 띄게 날카로워져 있었다.


내가 소위 말하는 ‘섹시하고 쌈빡한’ 아이템을

찾아내지 못하자

그녀는 사무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야, 너 귀 먹었냐?”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꽂히는 게 느껴졌다.


울컥했지만 쪽팔림이 먼저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 달 줄게.
그 안에 나아지지 않으면 알아서 나가.



그리고 그날 저녁,

팀장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했다.


“고기 사줄게. 밥 먹으러 가자.”


나는 장이 꼬였다고 거짓말하고

혼자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맥주에 치킨을 먹으며

가만히 생각했다.


아,

잘리기 전에

내가 먼저 나가야 하나.


그런데


나,

갈 곳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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